[弱달러, 세계질서를 바꾼다] <6> 국부펀드의 공습

선진국 주도 경제질서 근본 허물어
차이나·오일달러 중심 최대 2兆9,000억弗 달해
글로벌 기업·금융사 인수로 '선진국 직행' 노려
기간산업까지 손뻗쳐 정치·외교 영향력 확대도


[弱달러, 세계질서를 바꾼다] 국부펀드의 공습 선진국 주도 경제질서 근본 허물어차이나·오일달러 중심 최대 2兆9,000억弗 달해글로벌 기업·금융사 인수로 '선진국 직행' 노려기간산업까지 손뻗쳐 정치·외교 영향력 확대도 홍준석 기자 jshong@sed.co.kr "국부펀드의 투자다변화는 시장은 물론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미국 유력지인 뉴욕타임스) "국부펀드의 급신장이 국제 금융질서를 위협하고 있다."(클레이 로어리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 차이나ㆍ오일 달러 중심의 국부펀드의 팽창은 선진국 주도의 경제질서를 근본 토대부터 허물고 있다. '국가들이 통제하는 펀드는 지금까지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던 현상'이라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고백은 선진 주요국들의 공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국부펀드는 현재 선진 기업과 금융회사, 에너지ㆍ원자재 개발 등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이를 통해 '선진국행 직행버스'에 타겠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ㆍ러시아 등은 오는 2015년 12조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국부펀드를 지렛대로 활용해 정치ㆍ외교적 영향력을 극대화할 기세다. 특히 국부펀드는 서구 다국적 기업에 대항해 개발도상국이 의도적으로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달러 약세가 만든 '괴물'=블룸버그통신은 최근 '12조달러짜리 괴물이 세계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기사에서 "국부펀드가 고수익을 위해 채권이 아닌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의 지적대로 국부펀드는 중국 등 아시아 수출국들이 외환보유액이 급증하자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국채보다 주식을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예전에는 미 국채 등 비교적 안정적 자산에 투자했으나 달러화 가치 및 미 국채수익률이 하락하자 최근에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주식ㆍ파생상품 등의 투자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기업 인수합병, 사모펀드ㆍ헤지펀드 등 위험자산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국부펀드는 올 상반기 현재 30개 국가에서 운용하고 있거나 설립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체 규모를 2조5,000억~2조9,000억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세계 외환보유액(5조달러)의 60%에 달하고 헤지펀드 시장규모(1조5,000억달러)마저 웃도는 것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2012년 글로벌 국부펀드 시장이 약 12조달러, 2022년에는 28조달러로 불어나 외환보유액(13조달러)의 2배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 전체 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올 상반기 현재 2.5%에서 9.2%로 껑충 뛰게 된다. ◇선진 주요국, 국부펀드 공포감 확산=미국은 지난 22일 워싱턴에서 개막되는 제62차 IMFㆍ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앞서 8개 국부펀드 국가 대표들을 불러모았다. 이른바 'G7+8 아웃리치(outreach) 재무장관회의'로 한차례 경고음을 보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서방 선진국들의 모임인 G7과 국부펀드를 운용 중인 아시아 국가들과 이견 차이만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국부펀드가 선진국들의 경제 안보를 위협하고 있어 투명한 운용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아시아 국가들은 불필요하고 차별적인 규제라며 강력 반발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이미 국부펀드가 기간산업마저 노리자 각종 규제책을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ㆍ러시아, 중동 국가 등이 국부펀드를 이용해 전략적 목적으로 통신ㆍ에너지ㆍ금융산업 등에 투자를 확대할 경우 국가안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환율개입, 공정경쟁 저해 등으로 금융시장의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가안보를 해칠 위험성이 있는 외국 정부의 투자제안은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를 통해 나름대로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독일도 국부펀드의 자국기업 투자를 감시ㆍ제어할 수 있는 기구설립을 추진하는 한편 프랑스와 공동으로 EU 및 G7 차원에서 대응방안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응책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경우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해외로부터 자금 유입이 절실한 실정이다. 실제 중국투자공사(CIC)는 지난 5월 미국 내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계 사모투자펀드인 블랙스톤의 지분 10%를 30억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블랙스톤은 미군이 사용하는 위성기술을 제작하는 방산업체 등에 투자하고 있다. 오히려 중국은 기회만 되면 1조4,00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중국이 달러를 대량 매각하면 달러 가치는 더 폭락하고 미국 경제는 파산을 맞을 수밖에 없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부펀드는 정부의 정책 의지나 영향력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민간 펀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앞으로 중국 등이 정치ㆍ외교적 논리에 따라 국부펀드를 움직이면 민간 자율에 기초한 서구의 경제논리는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서구 다국적 기업에 대항해 정부 주도의 거대 자본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국가자본주의 경향이 일부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국부펀드 현실 재경부-한은 힘겨루기… 규모 미미 차이나ㆍ오일 달러와 달리 우리나라 국부펀드의 위상은 아직 미약한 실정이다. 지난 2005년 한국투자공사(KIC)가 총 200억달러 규모를 한국은행과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출범했지만 재정경제부와 한은의 입장이 다른데다 운용 규모가 경쟁국에 비해 적고 소극적인 투자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외환보유고는 국가 비상금이어서 고수익 목적의 위험자산 투자에 함부로 사용하면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부펀드 규모를 늘리려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외환보유액을 인수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은은 KIC 출범에 대해서도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은의 또 다른 관계자는 "KIC처럼 외환보유고에서 직접 떼어 가서 운용하는 국부펀드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우리가 운용하거나 또는 운용기관에 위탁할 수 있는데 굳이 KIC를 거쳐 재위탁하는 것은 필요 없는 중간상을 하나 더 만든 꼴"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은의 국채발행 방안에 대해 재경부는 재정부담 증가를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재경부 측은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을 위해서라도 국부펀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아웃리치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해 "투명성 제고에 찬성하지만 (선진국의 국부펀드 규제 움직임에 대해) 반대한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용어설명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란 한 국가가 남는 외환이나 오일머니를 투자용으로 따로 조성한 자금을 말한다. 국가가 남는 외환보유액을 국가의 이익을 위해 다른 곳에 투자하는 펀드를 일컫는 말. 최근 들어 산유국ㆍ중국 등 신흥 성장국을 중심으로 국부펀드 조성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입력시간 : 2007/10/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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