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선물시장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던 세계선물거래소 연차회의에 홍콩과 싱가포르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 홍콩이 지난해에는 성대한 파티까지 주관했던 점을 감안하면 1년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선물 부문 사장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두 시장의 공통점은 정부 주도로 통합이 이루어졌고 선물시장이 주식시장의 부속 시장으로 전락한 케이스이다. 통합을 앞두고 있는 한국 선물시장의 5년 후, 10년 후 위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
세계 선물시장은 통합ㆍ제휴 등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주식시장끼리의 통합이나 주식ㆍ선물시장의 통합은 새로운 뉴스거리가 못 된다. 세계 1등 시장인 독일 유렉스는 현물ㆍ선물을 일찍이 통합해 상장까지 했고, 파리ㆍ암스텔담ㆍ브뤼셀의 통합거래소인 유로넥스트와 유로넥스트가 인수한 런던금융선물거래소 모두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제휴는 거래소차원 뿐만 아니라 전산ㆍ청산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시카고의 CBOT가 유로넥스트의 전산시스템을 쓰고, 런던청산회사 LCH는 유로넥스트의 청산 자회사와 합병을 하기로 했다.
이러한 통합ㆍ제휴가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이유는 한결같이 경쟁에 살아 남기 위함이다. 인터넷 거래가 늘어나고, 자본 자유화가 확산되면서 선물시장 투자자들은 국가나 국경에 구애 받지 않는 글로벌 투자를 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충분한 유동성이 뒷받침되는 상품이 있고 거래비용이 싸고, 매매ㆍ청산ㆍ전산 등 제 분야의 투명성ㆍ안정성 등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부합되는 시장환경이다.
투자자 기호에 철저하게 부응함으로써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유렉스다. 한 때 독일국채 상품이 대부분 런던에서 거래되었으나, 유렉스가 전산ㆍ청산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회원제에서 개방형 분배제도를 도입한 이후 독일 국채거래를 되찾아 왔다. 시장을 잃는 것도, 또 키우는 것도 순간이라는 좋은 사례이다. 거래량의 70%가 외국인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질 정도로 유렉스의 국제화 전략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유렉스가 이렇게 세계선물시장의 최강자가 된 것은 겨우 3년에 불과하다. 설립된 지 5년 밖에 되지 않는 유렉스가 어떻게 150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시카고의 2개 거래소를 제칠 수 있었을까. 한마디로 `국제적 서비스 기업`을 지향한 결과이다. 범유럽시장 전략, 투자자의 입맛에 맞는 상품개발, 탁월한 전산시스템, 주식시장과 선물시장의 단일 청산 플랫폼, 낮은 수수료 구조, 강력한 시장 이미지 구축과 마케팅, 또 투자자 중심으로 일관성 있게 업무방식을 개선해 온 리더십 등을 꼽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잘 나가는 시장의 CEO들은 모두 투자은행 출신이다. 유렉스의 페르샤는 골드만삭스 출신이고 시카고선물거래소의 맥널티는 맥킨지와 UBS를 거쳤다.
지난달 스위스 선물거래소 연차회의에서 유럽 최대 마켓메이커인 마코(Mako)사의 프뤼스 사장이 한국시장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마코사는 시드니 사무소를 통하여 지난해부터 코스피200선물 거래를 하다가 지난 8월 이후 중단했다. 한국시장이
▲유동성은 풍부하나 청산수수료가 유럽시장의 2배나 되고
▲달러나 미 국채를 증거금으로 사용할 수 없어 거래 시마다 환전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며
▲전산시스템도 안정적이지 못하고
▲나아가 외국투자자에게 차별적인 관행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하나하나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나 보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에 차별적인 시장이라는 인식을 빠른 시간 내에 바로 잡을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격심한 경쟁, 세계화의 환경 하에서 한국선물시장이 의미 있는 시장으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시장은 개인투자자 중심의 유동성은 있으나 글로벌시장과는 거리가 있는 로컬시장이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혁신적인 시장 발전전략이 필요하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3개 시장의 통합, 주식회사화 및 상장까지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 동시에 다양하고 복합적인 거래를 뒷받침하고 세계시장과 쉽게 접속 가능한 전산 시스템으로 재구축하고, 청산기능도 세계수준의 비용구조를 가질 수 있도록 기능 및 비용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시장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시장인프라 및 제도 운영방식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고 국제적인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제경쟁력이다. 예를 들면, 향후 10년 내에 외국인 투자자 비중을 30%나 4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감독기관, 거래소의 성과 평가지표로 삼는 방법은 어떨까. 인재육성 또한 시급하다. 현재 증권관계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여유자금의 5%정도만 해도 3,000만달러 규모가 된다. 300명을 해외 투자은행 등에 파견 훈련시킬 수 있는 돈이다. 급성장하는 한국 선물시장을 주마가편 할 수 있는 중요한 인재육성 장치가 될 수 있다.
<강정호(선물거래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