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공간그룹 사옥은 크게 본관과 신관, 그리고 두 건물 사이에 있는 한옥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각각의 건물은 공간그룹을 이끌었거나 이끌고 있는 3명의 건축가를 상징한다. 지난 1971년에 지어진 본관은 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고(故) 김수근 선생의 작품이다. 검은색 벽돌 건물을 담쟁이덩굴이 덮고 있는 이 건물은 우리나라 건축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본관에 잇대어 지어진 신관은 공간의 2대 소장을 맡았던 고(故) 장세양 선생이 설계했다. 유리로 마감돼 벽돌 건물인 본관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본관과 신관 사이에 폭 싸여 있는 'ㄷ'자형 한옥은 1996년부터 공간을 이끌고 있는 이상림(57) 대표가 건설사가 보유하고 있던 건물을 고가에 인수해 개축한 것이다. 북촌 문화포럼에서 활동하며 한옥 보존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 대표는 "한옥은 별도의 치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 자체가 훌륭한 디자인이자 건축물"이라면서 "새로운 한옥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을 살리면서도 현대적 가치를 담은 건축물을 설계하려는 공간의 건축철학이 이들 사옥 건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건축가 이상림-한국 건축 위해 건축가 스스로 노력해야
5일 공간 사옥에서 만난 이 대표가 주는 느낌은 '편안함'이었다. 빗지 않은 듯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지난해 한국건축가협회장 겸 한국건축단체연합 회장 자격으로 서울시와 함께 2017년 세계건축가연맹(UIA) 세계건축대회 유치를 진두지휘했던 그는 올 2월 임기를 마치고 공간 경영에만 전념하고 있다. "협회를 이끌 때는 머리에 힘도 주고 해서 강인해 보였을 것"이라면서 "이게 본래 모습"이라며 껄껄 웃었다.
세계건축대회는 각국 6,000여명의 건축가와 학생 등 3만여명이 방문하는 건축계의 '올림픽'이다. 우리나라는 1993년과 2002년 대회 유치에 실패한 뒤 '2전3기'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세계건축대회 유치는 우리나라 건축계에 혁명과 같은 변화를 가져올 겁니다. 단순히 많은 건축가가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고 이를 통해 한국 건축계가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습니다."
그는 이 대회가 한국 건축을 전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되는 것은 물론 큰 행사를 계기로 국내 건축계가 단합하고 한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국내 건축계의 실력에 대한 그의 평가는 혹독했다.
"많이 발전했지만 설계능력은 확실히 떨어집니다. 시공능력은 상위 10위권이지만 설계능력은 20위권 밖입니다. 설계는 창의성이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대학은 물론이고 초ㆍ중ㆍ고교에서 그런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잖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획기적이고 독보적인 설계가 잘 안 나온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국내 건축계의 위상은 대형 프로젝트에서 배제되는 등 홀대를 받는 것도 원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해외에서 잇따라 수주에 성공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용산역세권개발 등 대형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뒤늦게 국내 건축사무소들을 포함시키기는 했지만 사실 로컬로 참여하는 정도에 불과하죠. 외국 건축가가 설계한 것을 보완하는 수준입니다. 솔직히 아쉽습니다."
그는 "건설사들이 대형 주상복합 아파트나 초고층 빌딩을 지을 때 마케팅 측면에서 외국 건축가를 내세우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하지만 더 큰 마케팅을 하려면 국내 건축가를 써서 키우는 게 낫다"고 말했다.
건축주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외국 건축가와 경쟁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과 배려가 뒷받침돼야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최근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중국 건축가가 받았다는 것을 교훈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중국의 왕수(王澍)라는 건축가가 이 상을 받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왕수 못지 않은 중국 출신 건축가가 많은데 40대 후반의 왕수가 받은 것은 젊은 건축가를 키우겠다는 중국 건축계, 더 나아가 중국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중국이 이만큼 국력이 강해졌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인간 이상림-희망의 보금자리등 사회공헌 열심
이 대표의 원래 꿈은 아버지를 이어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대 입시에서 낙방한 뒤 차선책으로 건축과에 들어가면서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다.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그는 건축 설계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고 했다. 74학번인 그의 동기들은 대부분 건설사에 취직해 '오일머니'가 넘쳐나던 중동으로 떠났다. 중동에 가지 않고 국내에 남으려면 설계를 해야 했고 군 제대 후 공간에 입사하면서 건축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인생 멘토는 누구일까.
"아버지, 김수근 선생, 그리고 전세계를 다니면서 만난 건축가 그룹을 꼽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 외에도 종교단체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하셨죠. 제가 건축 설계를 하면서 북촌 문화포럼을 통한 한옥마을 가꾸기, 사랑의 집 짓기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수근 선생은 만 5년 정도 모셨다고 한다. 젊은 그의 눈에 김수근은 건축을 대하는 태도가 여느 건축가와 확연히 달랐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김수근 선생은 특히 건축이 건축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문화와 함께해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요즘 '북촌 문화포럼'이라는 것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북촌에는 다양한 부류의 집단이 있는데 북촌 문화포럼은 한옥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북촌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을 주로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단순히 한옥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주거공간으로서 기능을 강화하고 한옥 마을의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몇 년 전 '희망을 짓는 건축가-사무엘 막비와 루럴 스튜디오'라는 책을 직접 번역했다. 번역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막비 교수에게 감동해 인세를 토대로 '희망의 보금자리'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일종의 재능(지식) 기부 차원인지를 묻자 "진정한 재능 기부는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더 기여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간그룹은 건축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인 만큼 건축과 관련된 재능기부를 하는 거죠. 사옥이 있는 종로구 관내의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의 낡은 집을 수리해주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이 같은 활동을 주택에 머무르지 않고 어린이집과 같은 공공시설로도 확대할 생각이다. 버려지고 방치된 벽을 아름답게 꾸미는 아트월(Atr Wall) 작업도 계속해나가겠다고 한다.
CEO 이상림-건축 본래적 역할에 충실하겠다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국내 건축설계업계도 고전하고 있다. 직원 수가 500명에 이르는 공간그룹 역시 예외가 아니다. 17년째 최고경영자(CEO)로서 공간을 이끌고 있는 이 대표도 회사의 진로와 비전에 대해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건축설계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한 시대를 보여주는 문화의 총체이지만 외형 성장과 수익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심화된 경쟁과 건설ㆍ부동산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축설계업계의 돌파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는 "건축설계가 건설과 부동산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답을 내놨다.
"규모가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무슨 프로젝트를 했는가, 건축계에 어떤 메시지를 던졌는가가 중요합니다. 건설 프로젝트에서 건축 설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4%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설계의 가치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이 대표는 공간이 디자인 컴퍼니로 갈 것인지, 디자인 오피스로 남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두 방향으로 다 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규모의 경쟁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란다.
대형 건축설계사도 필요하지만 작지만 강한 건축사무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공간은 건축의 본래적 역할에 충실하면서 복합 프로젝트도 수행할 수 있는 건축사무소가 되고자 합니다."
그는 해외 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국내와 해외 비중이 절반씩 됩니다. 앙골라ㆍ알제리ㆍ모로코 등 아프리카에서 수주를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도 보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지어지는 8만석 규모의 대형 경기장 설계도 따냈다. 설계비가 100억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다.
"전세계 유수의 설계사무소 6곳과 경쟁해서 따냈습니다. 러시아에서도 수주가 거의 성사될 단계입니다. 우리나라 건축사무소가 성장하려면 국내 프로젝트도 다양해져야 하지만 해외로 나가 수주 대상을 다변화하는 것이 필수죠."
공간은 대형 설계사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어려움으로 중단됐던 양재동 화물터미널 개발 사업이 재개되고 있고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광교신도시 내 경기도 신청사 프로젝트도 맡고 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이 대표와 함께 인근의 북촌 칼국수집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때마침 창덕궁과 북촌 한옥마을을 관람하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건축 작업을 해온 이 대표가 그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했다.
▦1955년 서울 ▦1974년 서울고 졸업 ▦1978년 한양대 건축공학과 졸업 ▦1981년 공간건축 입사 ▦1991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원 졸업 ▦1996년 공간그룹 대표(현) ▦2004년 한양대 건축학과 박사 ▦2005년 미국건축가협회 명예회원 ▦2008년 연세대 석좌교수(유네스코 체어 프로그램) ▦2010년 한국건축가협회 회장 ▦2011년 한국건축단체연합(FIKA) 회장 |
■ 이상림 대표가 꼽는 대표 프로젝트는 이상림 대표는 30여년 동안 설계에 참여한 건축물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과 남극 장보고 기지를 꼽는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위해 지어진 주경기장은 무려 10년에 걸친 프로젝트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종합경기장으로 출발했다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면서 설계가 대폭 변경됐다.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의 가장 큰 특징은 직경 265m의 지붕이다. 미확인 비행물체(UFO)를 닮은 돔 형태의 지붕은 중앙 직경 128m가 개폐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예산 부족으로 현재의 폐쇄식 형태가 됐다. 이 대표는 이 설계로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하는 2002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장보고 기지 역시 고생을 많이 한 프로젝트다. 영하40도와 최대 풍속 60m의 극한 상황에서 활동하는 해양기지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최첨단 설계 공법을 적용해야 했다. 초속 60m에 이르는 남극의 블리자드 바람에 견딜 수 있는 시설을 짓기 위해 이 대표는 골프공의 홈(딤플)을 빌려왔다. 그는 "골프공이 바람의 저항을 뚫고 멀리 날아가기 위해 공 표면에 홈이 파여 있는 것처럼 기지 표면에 홈을 파서 건물이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또 고요한 극지 생활을 하는 대원들이 민감할 수 있는 소음처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장보고 기지 시설은 국내에서 만든 뒤 남극으로 옮긴 뒤 조립된다. 이 대표는 특히 영국의 남극기지를 설계한 휴브로튼사와 경쟁해서 이겼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 밖에도 이 대표는 서울중앙우체국과 달성군청사ㆍ광명돔경기장ㆍ고양아람누리ㆍ용인시문화복지행정타운 등의 설계에 참여했다. 이 중 달성군청사 역시 한국건축문화대상 비주거 부문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 대표는 군 제대 후 공간에 입사하기 전 1년여 동안 한국일보미디어그룹에 근무하면서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등 서울경제신문과의 인연이 깊다. 그는 "권위 있는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두 차례나 받은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라면서 "앞으로도 국내 건축계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도록 견인차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