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1월 9일] 예산안 심의와 비리수사는 별개 문제다

국회가 검찰의 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수사에 발목이 잡혀 내년 예산안 심의 첫날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 8일 법제사법위와 행정안전위 등 9개 상임위가 일제히 열렸으나 예산 심의는 언급조차 되지 않은 채 검찰 수사를 둘러싼 여야 간 공방만 반복해 법정기일(12월2일) 내 내년 예산안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일주일간 상임위별 예산 심의를 한 후 다음주부터 예산결산특위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해마다 시간에 쫓겨 예산안 심의가 수박 겉핥기식에 그치거나 아니면 법정기한을 넘기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한마디로 국회의 직무유기다. 지난해에도 12월31일 자정을 몇 시간 앞두고 예산안을 통과시켜 가까스로 준예산 편성을 피했다.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안의 4대강 예산 9조6,000억원 중 30% 삭감을 다짐한 상황에서 청목회 수사까지 겹쳐 지난해보다 사정이 복잡하고 불투명해졌다. 정국이 급랭함에 따라 예산안은 물론 농협법과 SSM 규제법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등 쟁점현안과 각종 민생법안 처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로서는 얼어붙은 정국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검찰이 국회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과 회계담당자 자택을 압수 수색한 데 대해 민주당은 "국회가 무참히 유린됐다"고 성토했고 한나라당에서도 "검찰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비리가 있으면 수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며칠 앞두고 압수수색을 강행해 국회를 시끄럽게 할 필요까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렇다고 여야가 예산 심의와 각종 민생법안 등의 처리를 팽개치고 정쟁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야 원내대표는 정치력을 발휘해 정기국회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엄밀히 말해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와 예산 심의를 비롯한 국회 본연의 책무는 별개 문제다. 국회가 검찰 수사를 빌미로 309조원에 이르는 새해 예산안 심의와 각종 민생법안 처리를 뒷전으로 미루거나 졸속으로 처리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특히 내년 예산안은 친서민 예산이라는 점에서 예산집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서민과 취약계층의 고통이 커진다. 국회는 반드시 법정기일 내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각종 민생법안 처리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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