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경영상황이 기대이상으로 좋아졌다.』한 때 재벌의 상징으로 지칭되던 「30대그룹」에 포함됐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몸집부풀리기에 주력하다 부도·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화의(和議)에 들어가는 등 최악의 경영상황을 맞은 기업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중간평가다. 살아남기위한 힘겨운 몸부림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들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생각 이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경쟁력없는 계열사는 물론 핵심사업까지 매각하면서 구조조정을 꾸준히 추진, 부채비율을 예전보다 상당히 줄인 것도 평가할만하다.
실제로 이들 기업의 대부분은 『한번 실패는 두번 다시 하지 않는다』는 각오로 구조조정을 필사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특히 장·단기 2가지 측면에서 처절한 생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자금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부도·워크아웃 등에 들어간 기업들은 무엇보다 운영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생존」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돈」이 되는 사업부터 매각하고 핵심계열사를 중심으로 해외자본 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고합의 경우 독일 엠텍마그네틱스사(磁氣테이프업체)와 멕시코 원사공장 일부(지분 40%)는 물론 유망의류업체인 (주)FCN을 신세계인터내셔널에 매각했고, 정보통신업체인 (주)KNC와 고합뉴욕생명의 지분도 합작사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합 관계자는 『계열사 지분 및 설비매각, 외자유치등을 통해 자금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은행권으로부터 자금지원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데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고합이 화섬 및 석유화학원료인 PX, PTA 등 세계 1,2위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울산1·2공장에 그룹역량을 집중하고 13개인 계열사도 ㈜고합과 고려석유화학 2개로 줄이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일도 2000년까지 계열사 및 보유부동산 매각으로 6억달러규모의 외자를 유치하고 핵심사업부문 위주의 단일회사체제로 운영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내놓고 있다. 한일은 이를 통해 1조1천억원의 자금을 조성해 2001년까지 부채비율을 200%대로 끌어내린다는 계획이다.
이들 기업은 이같은 노력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자금운용에 숨통이 트이고 있으며, 외부의 시각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노력만큼 아직까지 구체화된 것은 거의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1~2개 회사로 합병하겠다고 천명한 기업들이 각가지 어려움을 호소하며 이를 위한 노력이 지지부진하고 계열사 매각도 기대이상 진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을 위한 감자(減資) 등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단일회사 출범을 미루고 있다』면서 『이들 기업이 내놓은 어려움은 핑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리대상 기업들의 임직원들의 동요도 경영정상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들 기업에 몸담았던 임직원들의 20~70%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든 직장을 떠났다. 이러다보니 남아있는 직원들까지 동요되고 있다. 『우리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손을 놓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남아있는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재무구조 개선과 수익성 극대화에 초점을 둔 몸집줄이기도 중요하지만 이들 기업들을 이끌어갈 구성원들의 어루만지며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장기적인 차원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고진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