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명동과 탑골공원 사이에서

압축성장만큼 출산율 하락 무상보육 등 예산 투입에도 적정출산 반전시키기 어려워
직장 안정 새로운 가족문화 등 아이 기르기 좋은 환경 필요


명동은 젊음의 거리이다. 탑골공원은 언제부터인지 어르신들이 소일하는 곳이 됐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로 넘치는 명동형 사회에서 어르신들로 가득한 탑골공원형 사회로 줄달음치고 있다.

유엔의 인구 전망에 따르면 2060년에 한국이 세계 최고령국가가 된다고 한다. 영화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가 현실화된다면 미래에서 날아온 후배 세대들이 "바보야,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인구야" "기초연금 문제의 본질은 재정이 아니라 인구라고" 하면서 호통을 칠지 모른다. 우리가 저출산의 위험을 모르지는 않다. 저출산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몇 차례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액셀을 밟을 때마다 많은 재정이 투입됐다. 그럼에도 명동형 사회로 유턴하는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출산 동향이 심상치 않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9월간 태어난 아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나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신생아 수는 44만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05년 43만5,000명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합계출산율이 1.08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2005년 당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정부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그해 11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저출산고령사회 5개년계획(2006~2010)을 수립했다. 각 부처에서도 출산 지원 정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올해 통계청이 보내는 위기의 시그널에 무덤덤하다. 굵직한 정치적 현안에 가려서인지, 저출산 위기가 일상화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저출산의 위기는 한국을 비롯해 대만·싱가포르·홍콩 등 아시아의 네 용이 공통으로 겪고 있다. 아시아 4룡의 출산율은 1960년 5~6명에서 1980년 초에 2.1명 선이 무너졌다. 출산율 2.1명은 현 인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선을 뜻한다. 이후 2011년까지 1.2명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이들 4개국은 압축 성장과 치열한 경쟁, 높은 사교육비와 같은 공통점을 안고 있다. 압축 성장한 만큼이나 압축적으로 출산율이 하락했다. 4룡 모두 저출산의 위기를 감지하고 여러 대책을 써봤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근래에도 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1~2015)을 추진했고 2012년 7월11일을 인구의 날로 제정하고 2013년 1월 대통령이 나서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를 주재했다. 그동안 저출산 극복을 위해 많은 예산, 특히 보육에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보육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무상복지로 불이 옮겨붙어 무상보육으로 급진전했다. 저출산 대책이던 보육은 무상보육으로 이행했음에도 출산율 제고로 이어지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출산을 장려하는 백화점식 대책들로서는 저출산을 적정 출산으로 반전시키기 어려워 보인다. 국가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아이를 낳고 기르기 좋은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과거의 발전 패러다임에 머무는 한 앞으로 저성장과 저출산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생물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은 먹잇감이 풍부하고 서식처가 안전해야 한다. 사람도 안정된 직장과 안락한 보금자리가 있어야 한다. 최근 호주의 한 연구에 의하면 여성의 직장이 불안정하면 출산을 기피하고 직장이 안정될 때까지 출산을 연기한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의 경우 직장의 안정성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교육받은 여성들은 성취동기, 자유와 성 평등 의식이 강하다. 결혼으로 맺어지는 전통적인 가족관계의 구속도 싫어한다. 출산율의 반전을 위해서는 안정된 일자리, 새로운 가족문화의 형성, 아이로부터 느끼는 행복의 가치와 같은 정신적인 변화가 중요하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명동에 젊은이들이 넘쳐날 때 탑골공원의 어르신들이 넉넉해지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