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1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최근 정국의 최대 쟁점인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한 당의 입장을 천명했다.
최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을 묻기 전에 대통령 측근의 비리의혹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고 전제하고 “만일 대통령이 이 같은 비리에 연루돼 있다면 탄핵감”이라고 경고했다. 최 대표가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당이 노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라는 초강수 카드에 갈팡질팡하며 수세로 몰리는 형국을 돌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투표 거부할 수도 = 최 대표가 밝힌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한 한나라당의 입장은 `선(先)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비리의혹 규명, 후(後) 재신임 투표`로 요약된다. 이는 지난 주 노 대통령이 재신임 의사를 처음 밝혔을 때 연내 국민투표 실시를 불쑥 요구하는 등 `졸속대응` 했던 것과는 달리 최근의 여론조사 추이나 당내의 비판여론 등을 감안한 신중론을 대폭 반영한 것이다. 특히 국민투표와 관련, 최 대표가 “정책이 아닌 대통령 신임에 관한 투표는 위헌이라는 논란이 있으므로 국회 입법절차를 포함한 구체적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민주당측 요청을 수용한 것으로 상황에 따라 위헌논란을 명분으로 국민투표를 거부할 수 있는 퇴로를 열어 놓겠다는 뜻이 내포된 것으로 풀이된다.
◇탄핵 카드로 국면돌파 시도 = 최 대표는 “측근비리를 숨기고 봐주는 것 하나 만으로도 탄핵감”이라고 강조, 향후 재신임을 둘러싼 정치지형의 변화에 따라서는 특검수사에 이어 탄핵카드도 공식 거론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이날 대표연설 전에 개최된 한나라당 긴급 의원총회에서도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비리 의혹에 연루돼 있다면 `탄핵대상`이라는 점을 명시, 국민투표보다 탄핵추진에 무게를 두며 대(對)청와대 공세를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 대표도 의총에서 “사법기관이 제대로 숨쉬는 나라라면 이번 문제는 국민투표보다 탄핵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해 내심 국민투표보다는 탄핵추진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한나라당 지도력 부재 드러나 = 이날 대표연설에 앞서 열린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최 대표는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응하는 당의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방안으로 자신의 정계은퇴는 물론 한나라당의 의원직 총사퇴를 연설문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이에 상임운영위원들이 “의원직 총사퇴 부분은 의원들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제동을 걸어 한나라당은 본회의 직전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비공개 의총에서는 최 대표의 제안에 대해 `당연한 조치`라는 주장과 `쇼로 비쳐질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서 의원들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임동석기자 freud@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