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투자자들의 동의 없이 투자 대상을 바꿨다가 원금손실이 발생했다면 운용사와 수탁기관인 은행에서 손실 전액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손실을 본 펀드 투자자들의 소송이 잇따르는 가운데 손실액을 100%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임범석 부장판사)는 주가연계펀드(ELF)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강모씨 등 214명이 펀드운용사와 수탁사 등 5곳을 상대로 낸 투자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펀드운용사인 우리자산운용과 수탁사인 하나은행은 펀드 손실액인 61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우리자산운용과 하나은행은 펀드 KW-8호 상품을 출시하면서 980명에게서 284억여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우리자산운용은 투자약정서에 거래 상대방을 'BNP파리바'로 명시했지만 실제는 리먼브러더스에 투자해 이 회사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파산하자 원금을 거의 날리는 피해를 입었다.
이에 강모씨 등 투자자들은 우리자산운용 등이 약정대로 BNP파리바에 투자했다면 리먼브러더스에 투자했을 때보다 61억원의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운용사가 투자설명서에 명시된 장외파생상품 거래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바꿔 투자손실을 입힌 것이 인정된다"며 "이는 약정을 위반한 것으로 운용사와 감독의무를 다하지 못한 수탁사가 함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는 투자 대상이 펀드운용사의 재량권임을 인정해온 기존 법원의 판결과도 배치돼 주목을 끈다. 지난 6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정호건 부장판사)는 같은 상품에 투자한 투자자 52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운용사의 투자 대상 재량권을 인정해 "배상책임이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