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의 초대 장관직을 내던졌던 김종훈씨가 속내를 쏟아냈다. 한국 정계와 관료사회, 재계의 편협한 민족주의가 자신을 내몰았다는 것이다. 성공한 이민 1.5세로서 미국에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모국에 헌신하겠다'던 그가 겪었을 고충이 안타깝지만 전혀 수긍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정말로 그는 '민족주의'라는 벽에 막혀 미국으로 돌아갔을까.
△'민족주의'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770년. 독일 평론가인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가 최초로 만들어냈다는 게 정설이다. 5개월 전 타계한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역저 '만들어진 전통'에서 산업혁명기에 지배층은 물론 사회개혁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맞물려 민족주의가 생성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독일 사학자 한스 울리히 벨러는 '민족주의는 허구일 뿐 아니라 평화와 협력 관점에서 실패한 이데올로기'라고 단언한다. 물론 이들이 모두 옳은 것만은 아니다. 홉스봄은 생전에 민족의 소멸을 예고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동북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영토 분쟁에서 보듯이 저마다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타민족에게 관대했던 중국마저 중화민족주의의 기치를 내거는 판이다. 고구려역사를 훔치려는 동북공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동북아 민족주의는 2차 대전 직전까지 미국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미국이 인종의 용광로라고 하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율과 타인종 배척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던 나라다. 보호무역과 유치산업 보호도 미국이 원조다.
△김종훈씨를 대했던 관료들은 한국어 실력이 모자라 서류 결제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으로 모국에 헌신하려 했다면 미국에서 성공을 위해 땀 흘렸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노력했어야 마땅하다. '민족주의'운운은 자신의 부족함의 다른 고백으로 들린다. 인간적 미성숙도 엿보인다. 모국에 대한 원망이 자기를 믿어줬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도리인가. '상실의 시대' '1Q84'를 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표현을 빌려 한마디 하고 싶다. '민족주의에 책임을 돌리는 값싼 행위 속에 영혼의 길을 막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