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태반의 신비

영양분·호르몬서 간세포증식인자까지 담겨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인체 기관은 무엇일까. ▦여성에게만 있다 ▦일정 기간만 존재하다가 없어진다 ▦지름 20cm, 두께 2.5cm의 원반 모양이다 ▦약이나 화장품의 재료로 쓰인다 ▦두 사람의 세포가 섞여 만들어진 기관이다. 답은 바로 '태반(placenta)'이다. 태반은 자궁에 연결된 원반 모양의 기관으로 중앙의 탯줄이 태아의 배꼽과 연결돼 있어 산모와 태아를 직접적으로 잇는다. 아이가 출산하면 함께 배출되는 태반은 여러 면에서 일반 기관과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산모와 태아의 경계선, 태반의 비밀을 벗겨보자. 태반은 태아가 자라는데 필요한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산모와 태아의 물질 교환이다. 산모의 산소와 양분을 태아로 전달하고, 태아의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산모에게 전달한다. 또 흥분 상태를 만드는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은 태반을 통과하면서 그 활성이 없어지기도 한다. 태아에게 든든한 방어막이 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태아가 신체 기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때 각 기관의 역할을 대신하고, 특히 뇌하수체를 대신해 태아의 뇌 발달을 촉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산모가 기분 좋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은 태아에게도 전달돼 태아의 뇌 세포를 활성화 한다. 태반에는 또 태아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영양분과 호르몬은 물론이고, 간세포증식인자(HGF)와 같은 성장인자와 세포증식에 관련된 사이토카인도 들어있다. 의학계는 이 같은 사실에 주목, 오래 전부터 태반을 의약품으로 쓰고 있다. 기원전 4세기 히포크라테스가 태반의 효능을 언급했고,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태반의 기능이 설명돼 있다. 최근 주목받는 줄기세포도 태반에 있다. 탯줄과 태반 안의 혈액을 '제대혈'이라고 하는데 이 속에 다량이 들어있다. 태반의 줄기세포를 보관해 두면 장차 산모와 아이가 질병에 걸렸을 때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태반이 면역체계를 피해 산모의 몸과 하나가 되는 이유를 완전히 밝힌다면 장기이식,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결정적인 해법을 얻을 수 있다. 장기이식에서 가장 큰 문제는 체내의 면역체계가 기껏 이식한 장기를 타인으로 판단해 죽이는 데 있다. 예전에 불결한 것으로 여겨 버려졌던 태반은 오늘날 현대 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을 치료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태반의 신비가 밝혀져 난공불락으로 남아있던 질병들이 차례차례 극복되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