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바둑영웅전] 유들유들한 구리

제1보(1~18)



16세의 소년 천야오예가 결승전에 올라가 구리의 5번기 파트너가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 두 사람의 결승5번기가 최악의 카드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중국기원은 중국 선수의 우승이 확정된 터이므로 축제 분위기였고 한국기원도 사뭇 관대한 분위기였다. 오래간만에 중국 기사가 우승컵을 가져가는 것도 나쁠 것 없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오고갔다. 그런데…. 구리가 제1국과 제2국을 불계승으로 제압해 버리자 주최측인 조선일보사와 후원측인 LG그룹의 관계자들은 고개를 홰홰 내저었다. 흥행 실패라는 것이었다. 체급이 맞지 않는다느니 천야오예가 함량미달이라느니 하는 식의 극언까지 나오고 있었다. 구리의 친구들은 구리에게 1패나 2패를 일부러 해주는 것이 어떠냐고 농담조로 말했다. 유들유들한 구리는 그 말을 듣고 대답했다. “최종국에서 내가 이긴다는 보장만 있으면 2패를 기록해 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러다가 내가 덜컥 져서 준우승에 머물면 어떡하지?” 다시 흑백을 바꾸어서 제3국이 열렸다. 구리의 백번. 사이버오로의 해설자는 윤현석8단. 연구생 시절에 너무도 성적이 발군이어서 입단대회 시즌이 되기도 전에 특별히 입단을 허락받은 독특한 경력을 지닌 인물이다. 1974년생 이창호보다 1년 연상으로 김영삼7단과 동갑이고 김승준9단보다는 1년 연하이다. 최근의 랭킹은 38위. 백16에 구리는 5분의 시간을 썼다. 뻔한 자리에서 그가 뜸을 들이자 검토실에서는 참고도의 백1을 검토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는데 결국 16으로 낙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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