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자체들의 재정이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지난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성남시가 3,200억여원을 투입해 건립한 분당구 여수동에 위치한 호화 청사 모습. /서울경제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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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등 복지확대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면서 지자체의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방만한 경영으로 이미 지자체의 정상운영에 차질을 빗는 곳이 수두룩한데 무상복지까지 확대될 경우 감당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7월 경기도 성남시는 사상 처음으로 채무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으며 대한민국의 간판 부자동네인 서울의 '강남 3구'도 재정난을 호소하며 신규사업을 전면 중단하거나 보류하는 극약처방을 내놓고 있다. 서울ㆍ인천ㆍ대전ㆍ대구 등 지자체들도 재정난에 허덕이며 신청사 및 체육시설 건립 보류, 지방채 발행 중단, 산하기관 구조조정 등 강도 높은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재정난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민선자치제 도입으로 '정치적'민주주의는 큰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지자체의 '경제적' 자립도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절름발이 지자체'라는 자조적인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하거나 조속히 해결 방안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지자체 재정 대란'이 발생할 것이란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자체들의 재정난 현주소와 자구방안을 점검해본다.
"IMF 한파보다 더 매서운 재정 한파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서울시의 한 자치구 예산 담당 공무원은 재정상황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49.3%에 그쳤다. 전체 예산 총액 중 50% 이상을 자체재원이 아닌 서울시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치구(自治區)가 아니라 '행정구(行政區)'라는 푸념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특히 올해는 무상복지 강화 등 사회복지 예산 증가와 지방세제 개편,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지방세 수입 감소 등이 맞물리면서 자치구의 재정난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부자동네 강남 3구도 '개미허리'전략= 대표적인 부자동네인 강남ㆍ서초ㆍ송파 등 강남 3구는 올해 예산을 지난해보다 줄이면서 긴축재정에 들어갔다. 재정상태가 이들 보다 못한 다른 구들은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신규사업을 다시 검토하는 등 재정 한파에 대비하고 있다.
서초구의 경우 올해 예산은 3,140억원으로 지난해 3,756억원에서 616억원(16.4%)이나 줄었다. 세입여건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세출예산을 편성할 때부터 모든 사업을 재검토해 불필요한 예산을 크게 줄였다. 행사ㆍ축제성 경비를 47.2%(4억5,300만원), 사무관리비는 11.5%(18억6,700만원) 줄였다. 신규 자산취득을 엄격하게 통제해 자산 취득비를 전년 대비 67.7%(38억8,500만원)나 대폭 축소해 편성했다. 하지만 구는 인건비와 취약계층 수혜금 등 국가정책에 따른 지방비 분담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재정지출 여력은 당분간 호전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2008년 도입된 재산세 공동과세로 서울시의 재정보전금 지원이 올해부터 끊기고 부동산 경기침체 여파로 세수마저 크게 줄어 재정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서초구 관계자는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서초구도 시의 조정교부금을 받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구도 올해 예산을 전년보다 993억 줄어든 5,410억원으로 편성했다. 재산세 공동과세로 2008년부터 매년 재산세의 절반인 1,500억원 가량이 서울시로 넘어갔고 올해부터는 재정보전금마저 중단된다. 또 지방세제 개편으로 징수교부금 산정 기준이 변경되면서 112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하는 등 재정상태는 악화일로에 있다. 구는 이 같은 재정여건을 감안해 지난해 10월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방안을 마련해 민간위탁사업에서 80억원, 도시관리공단 인원감축 및 조정으로 40억원 등 총 120억원을 절감하기로 했다.
송파구는 올해 조정교부금 306억원을 받는데 이는 지난해 31억원보다 10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송파구도 서울시의 지원 없이는 자체적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기 힘든 처지가 됐다. 서울시의 교부금 지원액수가 늘면서 70%대를 유지했던 재정자립도는 올해 61.2%까지 뚝 떨어졌다.
◇무상급식 등 복지부문 예산증가로 재정난 더욱 심화= 다른 자치구들의 재정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강남ㆍ서초ㆍ중구를 제외한 22개 자치구의 주요 세입은 시에서 내려주는 조정교부금이다. 조정교부금의 주요 재원은 취ㆍ등록세인데 부동산 경기침체로 서울시의 재원 마련이 여의치 않아 자치구에 내려 보내는 조정교부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다 무상급식 등 복지부분 예상증가로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 서울시구청장협의회가 18개 자치구별 2011년 순세계잉여금 부족액(세입전망-편성액)을 분석한 결과, 자치구별로 최소 14억원에서 최대 31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진구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작년보다 49억원 감소한 608억의 교부금을 받게 된다"며 "기존 투자ㆍ시설사업을 계속 추진해야 하지만 상반기에는 자금여력이 없어 우선 시로부터 교부금의 일부를 지원받았다"고 토로했다.
◇곳간 텅 빈 지자체들 각종 사업포기 잇달아= 인천시는 2014년 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해 서구 가정동과 공촌동 일대에 4,500가구의 선수촌과 미디어촌을 건립하기로 했지만 예산부족을 이유로 포기했다. 대신 남동구 구월ㆍ수산동 일대에 새로 지을 구월보금자리주택 아파트 6,068가구 가운데 4,865가구를 선수촌과 미디어촌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또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애를 먹고 있는 송도국제도시 내 6ㆍ8공구에 건립 예정인 151층 인천타워 건립계획도 전면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는 2013년까지 기존 남동구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을 교통이 편리한 시 외곽으로 옮길 계획이었지만 사업주체인 인천도시개발공사가 최근 경영악화를 이유로 사업을 포기하면서 사업계획 수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대전시 동구는 신청사 건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예산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된 뒤 오는 5월 재개될 예정이지만 자금마련이 여의치 않다. 동구청은 부족예산 300억원 중 올해 본예산에 62억7,000만원의 청사 건립비만 반영해놓고 있을 뿐이다. 동구청은 현 청사 매각 대금과 가오도서관부지 매각대금, 청사건립기금 등을 통해 143억원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동구청은 지하 2층, 지상 12층, 연면적 3만5,745㎡규모의 신청사 건립사업을 지난 2008년 시작했지만 4차 공사에 소요되는 예산 300억원을 확보하지 못해 공사를 중단한 바 있다.
대구시의 경우 열악한 살림살이 속에서 최근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는 신청사와 야구장 건립을 공식화하면서 재정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청사 마련에 필요한 재원은 1,500억~2,500억 원으로 시는 내년부터 매년 100억~150억 원 정도의 신청사 건립기금을 적립하고 적립금이 전체 건립비의 50%에 달하면 신청사 건립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시가 구상중인 신청사 규모는 정부가 정한 적정 청사기준을 초과하고 있어 한국지방공제회의 청사 건립기금 500억 원 대출도 받기 힘든 상황이다. 1993년 건립된 현 대구시 청사는 6대 광역도시 중 가장 좁은 것으로 직원들은 시청 인근 6개 건물에 분산돼 근무를 하고 있다. 산하 공기업을 포함한 대구시의 부채 규모는 2조5,516억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