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적극적 위험관리의 중요성

최공필<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현실에 대한 단견주의적 판단에서 비롯된다. 시장기대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해서 비판적 시각을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관리된 여건이 결국 부실만 키우고 적시의 정책대응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국민비용만 늘리는 현실에서 그 허구성이 입증됐다. 경제는 한정된 재원의 효율적 배분을 토대로 성장을 일궈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아까운 재원을 사후적 부담을 늘리는 데 집중시키고 있다. 소극적 위험관리의 결과다. 매번 강조되는 금융시장의 작동은 가격산정상의 왜곡과 편중된 자금흐름 등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다. 더욱이 실물침체가 금융부실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가장 안타까운 현실은 이중구조의 경제에서 수출이라는 외발 엔진으로 활력을 찾는 데서 비롯된다. 당연히 환율안정은 기본 전제며 이를 위한 시장안정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수밖에 없다. 자금흐름의 왜곡은 특정 부문의 일방적 위험누적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한 자본시장의 비정상적 작동은 위험기피적 투자행태를 고착화시키고 급기야 금리의 기간구조마저 망가뜨리고 있다. 당장 수출마저 위협받으면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인식은 내부적 불균형(내수침체)을 더욱 확대시켜 대외불균형(경상수지 흑자)을 누적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이 이러한 판단은 균형 잡힌 성장기조에 필요한 정책선택의 폭을 크게 제한한다. 재정이나 통화정책마저 환율정책에 볼모로 잡히기 때문에 심각해지는 내수침체를 완화할 수단이 없어지게 된다. 경상수지 흑자 누적을 통해 대내불균형 해소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시도는 수출과 내수의 단절,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작용 등을 감안할 때 분명 한계가 있다. 수출위주의 성장 패러다임하에서 초래된 구조적 불균형은 금리정책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교역재와 비교역재 부문의 상대가격 왜곡은 한편에서 부실처리 지연을 포함한 과다한 지지효과와 더불어 다른 한편에서 억압효과를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난맥상은 금리동향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비교역재 부문의 은행 의존도가 크게 높고 장단기금리마저 역전된 상태에서 한국은행의 콜금리 동결조치는 소위 마이너스에 근접한 균형금리와 실제금리의 차이를 더욱 확대시켜 내수침체를 심화시킨다. 더욱이 고유가와 환율안정 노력은 우리 여건과 괴리를 보이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해 정책 선택을 왜곡시키고 있다.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팽창적 정책효과는 손발이 안 맞는 거시정책조합으로 인해 기대하기 힘들다. 더욱이 장기채시장이 미성숙된 여건하에서 조그만 대내외 충격도 시장자체에서 흡수하기가 쉽지 않다. 만기구조의 제약으로 위험분산 여력이 제한됐고 내부적으로 채무감당 능력이 소진됐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정부의 개입과 각종 보증을 통해 가까스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잘못된 정책조합과 극도로 다기화된 정책 주체를 배경으로 구태의연한 처방이 되풀이된다면 위험요인은 해소되지 않고 미래로 전가될 뿐이다. 누적되는 위험을 차단하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만들어지려면 우리는 보다 적극적인 위험관리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충격에 민감한 우리의 일천한 시장구조하에서 시장작동을 원활히 하기 위한 사전적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장작동이야 말로 가장 효율적인 위험관리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미 체제적 한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보정 비용을 늘리기보다는 시장마찰요인을 과감히 제거해가면서 중장기적 차원의 포괄적 위험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지금과 같이 소극적 위험관리차원에서 위험신호 차단에 치중한다면 불균형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잠재적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사전적으로 대응할 경우 우리 경제의 위험수준은 크게 낮아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왜곡요인을 해소하고 시장의 작동이 원활해질 수 있는 여건을 구축해가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위험관리를 해나가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적극적 위험관리차원에서 손대기 어려웠던 근본 문제를 차분히 풀어나가려는 모두의 노력이 가시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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