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일제의 암울한 사회상을 보여주는 채만식의 대표작 '탁류'의 무대는 전북 군산이다. 군산은 인근 김제, 만경평야에서 나온 쌀을 일본으로 강제 수탈해가는 미곡 반출 항구도시였다.
당시의 중심가였던 장미동(藏米洞)은 '쌀을 저장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의 미곡 반출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옛 조선은행 건물과 일본식 가옥 등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어 번성했던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느끼게 한다.
미곡반출 무역항이었던 군산에 지어진 옛 세관건물은 군산의 대표적인 근대 건물 유산이다. 70여평 규모의 이 건물은 1908년 독일인이 설계했으며 낮은 화강암 기반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아 유럽양식으로 지어졌다. 사용된 적벽돌은 모두 벨기에에서 수입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심혈을 기울여 지은 주요 관공서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93년까지 실제 세관청사로 사용했을 만큼 보존상태도 뛰어나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과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이 건물은 현재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매달 2,000여명의 답사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각종 역사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1878년 두모진 해관(海關)을 시작으로 다른 정부기관보다 오랜 역사를 가진 관세청은 옛 군산세관 건물 외에도 근대 건축물을 몇 채 더 가지고 있다. 1911년 건립된 옛 인천세관창고 3개동도 그 중 하나다. 창고 하나는 수인선 전철 개통에 따라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뒤쪽으로 옮겨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6월 개청 130년을 맞는 인천세관은 세관창고 3개동을 문화유산으로 등록해 역사공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아쉬운 점은 관세청의 많은 근대 건축물들이 대부분 헐리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1911년 지어져 부산을 대표했던 부산세관 옛 청사는 1979년 도로 확장 공사로 철거됐다. 같은 설계도로 지어진 일본 요코하마 옛 세관건물이 현재 요코하마시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옛 군산세관과 쌍둥이 건물이던 목포세관 청사도 헐리고 없다. 1912년 건립된 인천세관 건물 역시 옛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근대 문화유산은 일제 강점기의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어 사라져야 할 일제잔재로 인식한 탓이 아닌가 싶다.
근대 문화유산은 당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들 유산도 시간이 흐르면 소중한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오월의 어느 아침 새로 복원된 남대문을 지나며 보존해야 할 세관의 문화유산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