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5월 15일] 신화는 없다?

남상훈(캐나다빅토리아주립대교수·경영학)

최근 뉴욕타임스에는 한 대기업에서 연봉 7만달러를 받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직, 졸지에 일당 12달러를 받는 환경미화원으로 취직한 한 가장의 이야기가 실렸다. CNN에는 한 학교에서 환경미화원 채용광고를 내자 첫날 700명이나 몰렸다는 뉴스가 나왔다. 거품 붕괴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미국 경제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위기 극복 열쇠는 정부에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우리 경제 전망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주가 및 부동산의 반등을 경기회복으로 성급하게 연결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물부문의 체감경기는 지난 1997년 말 시작된 IMF 외환위기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나름대로 재정지출 확대, 자유무역협정(FTA) 확산, 규제완화, 감세 등을 통해 경제회복을 시도하고 있으나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위기를 가져온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바탕을 둔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해결을 구하기보다는 대부분 단편적이며 전시행정적인 정책들을 제시하며 세계경제 환경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시점에서 과거 세계 최빈국 중 하나에서 고속성장을 이끌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조건들을 극복했던 경험을 반추함으로써 현재의 위기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변변한 자원도, 경제성장 경험도 없던 악조건을 극복하고 무려 20여년간 연평균 10%에 가까운 고속성장을 이뤄냈다. 국민 모두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지만 그 중심에는 강력한 정부의 리더십이 있었다. 그때 정부는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차별되는 정책들을 펼쳤다. 비전을 갖고 5년, 10년 후의 미래에 대비해 과감히 투자했고 적극적인 수출진흥정책으로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개척하도록 했다. 기업에 많은 혜택을 주는 대신 철저히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요구했고 교육에 많은 힘을 기울여 우수 인력을 양성했다. 그 결과 기업가정신이 살아나고 선진 기술을 배우려는 노력과 근면성이 불길처럼 일어나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졌다. 발명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을 이룬 18세기의 영국, 19세기의 미국ㆍ독일과 달리 우리는 창의력보다는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는 능력을 극대화해 경제를 성장시켰다. 권위주의체제는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나라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경제규모와 사회의 복잡성에 있어 지금과 그때는 직접 비교하기 어렵지만 경제위기 극복의 관건을 정부가 쥐고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정부는 투명성ㆍ공정성ㆍ전문성ㆍ일관성 등에서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신뢰를 못 받는 정책들은 모래 위에 세워진 집과 다름이 없다. 더 늦기 전에 국민의 신뢰회복에 필요한 정부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미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모방에서 창의력으로 바뀌어가는 대단히 중요한 과정에 있다. 모방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고통스러운 변화겠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정부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변화의 청사진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둘째, 교육환경을 바꿔 창의력과 함께 글로벌 환경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들을 육성해야 한다. 획일성에 바탕을 둔 지금의 교육제도는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인재 키우고 창의적 발전 도모를
셋째, 정부는 구조조정과 함께 기업들이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필요한 지원을 강화하되 해당 기업들이 지원을 악용하지 않고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철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강조한 것처럼 상황이 어려울수록 손쉬운 해결책을 구하려 하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을 먼저 감내하는 진솔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번 경제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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