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부터 수백장의 LP 레코드판을 모았지만 몇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버리다 보니 이제는 달랑 몇 장의 CD만 남았다. 음반 대신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게 익숙해진 탓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 음반업계가 음원 불법 유통을 근거로 네티즌과 유명 포털들을 고소하는 등 전운이 감돌았다는 사실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이동통신사와 포털들이 선정하는 음원 차트 순위에 맞춰 음악을 듣는다.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테다. 편리함은 대중문화의 획일화를 부추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수들도 다양한 실험 대신 대중의 선호도가 창작의 기준이 돼버린 것 같다. 특히 '나가수'에 소개된 노래가 음원 차트 상위권을 휩쓸면서 가수들도 신곡 발표 시점을 늦추는 등 문화계의 생명인 다양성에 적신호가 켜진 것 같아 안타깝다. 다음 차례는 도서다. 미국은 아마존 킨들을 중심으로 전자책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6월 제도권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삼류작가 존 로크가 9종의 범죄소설로 총 100만권을 판매해 '밀리언셀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미디어의 패러다임은 단말기에 의해 바뀐다는 말이 있다. 태블릿PC가 컴퓨터 시장의 지도를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에 국내 출판업계는 긴장과 관망이라는 엇갈리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온라인서점 등 10여군데의 전자책 유통채널이 형성됐고 2,000만원 이상이던 전자책 제작비도 10분의1로 내려가 곧 시장이 커지리라는 장밋빛 전망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관망하는 데는 한국 출판계의 특수성이 자리한다. 미국은 랜덤하우스ㆍ와일리 등 대형 출판사 3~4곳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으로 아마존이 협상하기 수월했고 영어라는 무기로 세계 독자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명확했다. 국내 주요 이동통신사와 포털은 킨들식으로 콘텐츠 확보에 나섰지만 만만찮은 일이다. 국내 단행본 출판계에는 등록된 출판사가 2만개가 넘고 스테디셀러를 낸 출판사가 100여군데도 넘어 일일이 협상하기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대형 출판사들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독자노선 구축에 무게를 싣다 보니 쉽게 전자책을 내놓지 않아 독자들이 볼 만한 것이 없다는 반응은 당연하다. 패러다임은 이미 바뀌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성을 키워온 단행본 출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디지털 시대에 독자들의 사고와 창의성을 키워낼 수 있는 반짝이는 기획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통사나 대형 포털이 아닌 출판사가 중심이 된 전자책 산업이 건전한 출판 생태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