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2.27조각에서 감사원장을 비롯 한국은행총재 검찰총장 금융감독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등 임기제 공직은 제외됐다. 임기제 공직의 임기보장은 공직의 안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와 대통령당선자 시절을 통해 공직의 임기보장을 약속한 것이나, 취임 후에도 새로 임명된 장관에 대해서까지 2년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은 그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노 대통령은 물론 인사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부인사들은 공직임기보장을 말하면서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또는 “본인이 사퇴한다면 몰라도”라는 식으로 꼬리를 달고 있다. 이유가 있거나 본인이 사퇴하면 바꿀 수도 있음을 은연중 비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금감위와 공정위의 역할은 막중하다. 금융개혁과 재벌개혁의 중심적인 추진체이기 때문이다. 두 기관의 장은 능력과 자질도 뛰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여타 경제부처와 호흡이 맞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인물이 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의 거취문제는 특별하다고 생각된다. 이 위원장의 거취문제는 그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그가 처해있는 정치적 입지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는 국회를 통과한 대북송금사건에 관한 특별검사법안의 핵심적인 수사 대상자다. 그가 산업은행 총재였을 당시 대북송금 사건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그는 국회에서의 위증혐의와 함께 사실규명 과정에서의 직무유기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과정은 물론 조사결과 책임이 인정될 경우 직무를 원만히 수행하기가 어려울 것임은 물론 조직의 사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젊은 경제부총리 체제에서 팀웍 유지에 회의적인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어려운 입장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고건 총리취임식은 물론 경제장관 상견례 자리에도 참석치 못했고, 오늘 열리는 경제장관간담회에 참석여부도 새삼 확인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 위원장의 이 같은 입지로 인해 금감위의 정책결정이나 수행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이 같은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용퇴를 하든지, 새 대통령이 재신임을 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대북송금사건의 정치적인 민감성으로 인해 노 대통령이 후자를 택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위원장의 현명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한다.
<전현식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