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운명을 바꾼 애널 리포트

공장 자동화기술업체 TPC 3D프린터 부품株 분류하자
직접 제품제작에 뛰어들어 대표주 탈바꿈… 주가 껑충

TPC메카트로닉스가 애니웍스와 함께 개발한 3D프린터 파인봇(Finebot)에서 주황색 화병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제공=TPC메카트로닉스

세계적으로 3차원(3D) 프린터가 제조업의 혁명을 불러올 제품으로 불리며 떠오르던 지난해 8월 이성호 당시 유화증권 연구원은 국내 관련 시장과 기업을 조사했다. 대부분 비상장사인데다 규모가 영세해 수혜주 찾기에 애를 먹던 이 연구원은 TPC(048770)메카트로닉스라는 상장사가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공압기계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이 연구원은 TPC가 생산하는 공장 자동화 기술이 3D프린터 제작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돌아와 '단언컨대 3D프린터는 가장 완벽한 장비입니다'라는 제목의 리포트에서 TPC를 부품 수혜주로 소개했다.

이 연구원은 리포트에서 "3D프린터의 기본원리인 XㆍYㆍZ축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을 제어하는 모션컨트롤 및 해당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TPC가 3D프린터의 제작 활성화에 따른 부품납품 확대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용우 TPC 최고재무책임자(CFO·상무)는 리포트를 보자마자 사장실로 달려가 쿡 밀어넣었다. 신성장동력 찾기에 애쓰던 엄재윤 TPC 사장은 리포트를 읽자마자 주력사업을 바꾸기로 결심하며 무릎을 쳤다. 팔꿈치로 옆구리를 슬쩍 찌르듯 작은 계기 하나가 생각과 행동을 바꾸게 하는 '너지(nudge)' 효과가 개화하는 순간이었다.

엄 사장은 부품납품만 하지 말고 전국 400여개 대리점을 보유하고 있는 TPC의 유통망과 모션컨트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3D프린터를 직접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비상장사인 3D프린터 업체 애니웍스를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3D프린터 사업에 뛰어들어 지난달에는 보급형 3D프린터를 시장에 내놓았고 현재 교육용, 연구소 시제품 제작용 등으로 한 달 만에 100대 이상을 파는 성과를 냈다.

리포트가 나올 당시만 해도 3D프린터 테마주였던 TPC는 이제 3D프린터를 직접 생산해내면서 국내 3D프린터 대표주로 탈바꿈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00원 후반대에서 2,000원 초반대를 형성하던 TPC의 주가는 이 리포트로 인해 연일 상승세를 이어갔고 3D프린터 생산업체로 이름을 올리면서 1만원대까지 올랐다. 지난 13일 주가는 9,450원이다.

TPC는 3D프린터 생산라인을 늘려 국내 3D프린터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엄 사장은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계기로 TPC가 성장성이 큰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고 주가상승, 기업 이미지 제고로 직원들의 자부심도 높아지는 등 회사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이달 말 인천 아라뱃길 신공장에 국내 3D프린터 업체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생산라인도 완공된다"고 말했다.

증권업계는 TPC 사례를 반긴다. 증권사 리포트는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 해당 사업의 성장성을 분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거꾸로 기업이 리포트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미 골드만삭스·노무라증권 등 외국의 증권사들은 컨설팅 형식의 보고서를 내고 있다"며 "TPC 리포트가 결과적으로 컨설팅 기능을 수행한 좋은 사례가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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