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11월 3일] 광역분권적 지자체 통합을

최근 지방행정구역 내지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지난 6월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에 들어갔고 관련 법률안도 여러개 상정돼 있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8월 말 자율통합 시군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방안을 발표했고 9월 말 마감된 자율통합 신청현황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장, 의회나 주민이 일방 또는 쌍방으로 통합을 신청한 사례는 18개 지역, 46개 자치단체에 이른다. 중앙집권 강화 우려되는 개편안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필요성은 다각도로 제시되고 있다. 생활ㆍ경제권과 행정구역 간의 불일치 해소, 기관ㆍ시설의 중복 설치로 인한 행정 비효율성 감소, 규모의 경제 확보와 지역 경쟁력 제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보다 궁극적 지향점은 현재의 중앙집권적인 국가 운영을 지방분권적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분권 강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어도 명목적으로는 정치권ㆍ학계ㆍ시민사회 등이 모두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지자체 장과 지방의회 의원은 주민이 선출하고 있지만 권한ㆍ재정 등 여러 측면에서 국가 운영은 여전히 중앙집권적으로 이뤄진다. 실질적 국가 운영이 중앙집권적일 경우 스스로 살림을 꾸릴 권한도 재원도 없는 지방은 가능한 한 많은 재원과 사업을 중앙정부로부터 확보하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지역 간 선의의 경쟁과 협력보다는 배타적 대립과 갈등이 지배하고 각종 선거에서 포퓰리즘적 지역개발 공약이 난무하게 된다. 반면 지방분권은 행정 분야에서도 자율과 책임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한다. 자기 살림을 스스로의 책임 아래 꾸리게 될 경우 각 지방은 주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필요에 따라 이웃 지방과 협력하게 된다. 지방분권적 국가 운영체제는 다양성과 적응능력을 높이며 정책실험의 장, 정책학습의 장을 제공한다. 중앙정부에 과도하게 집중된 행정업무 중 지방정부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것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행정능력을 공히 높이는 길이다. 그런데 현재 진행ㆍ논의되고 있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안 중에는 오히려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있다. 국회에 상정돼 있는 지방행정체제 개편 관련 법률안의 상당수는 230여개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를 몇 개씩 묶어 60~70개로 광역화하고 도를 없앨 것을 명시적으로 제안하거나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시군 자율통합 지원도 이러한 기초자치단체 광역화, 도 폐지로 나아가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도를 폐지해 중앙정부와 60~70개 지방자치단체가 바로 대면하게 되면 중앙정부의 힘이 상대적으로 더 강해질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는 방향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논의의 초점은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정을 어떻게 지방정부로 넘길 것인가'가 돼야 한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지방분권 강화를 담아낼 틀의 정비'라는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 지방정부 역량 키울 개혁 필요 세계화ㆍ지방화 시대를 맞아 지방정부는 무한경쟁의 세계시장에서 자본ㆍ기술ㆍ인력을 유치하면서 지역발전을 이끌 주체가 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광역 지방정부의 규모와 역량을 키우는 제도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기초자치단체 통합이 아니라 광역 지자체 통합을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기초 지자체 통합은 광역 지방정부 주도 하에 지역주민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점진적으로 추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광역분권적 국가 운영체제 확립 차원에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