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에서 영업중인 외국계 손해보험사는 12개. 이중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는 곳은 AIG손보사 단 한 곳 뿐이다. 지난 2001년 4월 우리나라 손보시장에 진출해 2년여만에 철수했던 알리안츠손보 역시 영업초기 자동차보험을 취급하지 않았다. 한국 보험시장에 진출한 외국계 손보사들이 유독 자동차보험 시장에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계 보험사인 에이스화재의 김형섭 마케팅 담당 이사는 “한국의 손보사는 자동차보험을 (수익보다는) ‘캐쉬 카우’(돈줄) 로 여기고 있는데 반해 해외에서는 자동차보험이 손보사들에게 분명한 수익을 내는 사업부문”이라며 “여러가지 악조건으로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시장에 외국계 손보사들이 진출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분명 우리나라 자동차보험 시장은 ‘정상’에서 벗어나 있다. 모든 경제 주체들이 부르짖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와도 엄청난 거리로 떨어져 있다. 이는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는 손보사들의 과당경쟁과 완성되지 못한 자율화로 여전히 경직돼 있는 자동차보험제도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더불어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는 운전자들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보험시장이 보다 성숙해 지기 위해서는 먼저 손보업계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안택수 손해보험협회 전무는 “손보사간의 자동차보험 요율 경쟁은 보험료 수입 감소 뿐만 아니라 보험사의 재무건전성도 악화돼 최악의 경우 파산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보험 시장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여러 요인 중 손보사간의 과당 경쟁이 우선 지적되는 것은 이 같은 경쟁 심화가 바로 보험사의 부실화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2002년 대한, 국제, 리젠트화재가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제3자에게 매각되거나 파산 절차를 거치면서 3,000억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경험이 있다. 뿌리깊은 손보업계의 과당경쟁은 시장에서 자동차보험 가입자에게 불법적으로 보험료를 할인하거나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형태로 벌어진다. 금융당국이 수 차례 실시한 특별검사와 위규 행위에 대한 문책을 통해서도 근절되지 않는 불법적인 영업은 결국 손보사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업비(설계사ㆍ대리점 등에 대한 판매 수당, 일반관리비 등)를 쓰게 만든다. 이런 구조가 손보사들이 자동차보험에서 해마다 영업적자를 내는 것은 물론 재무 구조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2002년 출범이후 확산되고 있는 온라인자동차보험이 시장에 가져온 영향에 대해서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손보사간의 가격 경쟁을 촉발시킨 온라인자동차보험이 초기에 드러낸 부작용을 해소하고 시장을 더욱 넓혀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보험 시장이 왜곡되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경직된 자동차보험 그 자체에 있다. 자동차보험은 2001년 8월 보험료 자율화로 시장에 맡겨진 듯 보이지만 ‘미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할증폭을 확대하는 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될 만큼 필요한 요율을 자동차보험료에 반영시키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다. 사고 경력에 따른 최저 할인 도달 기간이 획일적으로 적용돼 손해율이 낮은 운전자들의 보험료가 턱없이 비싼 것이 현실이다. 또 선진국의 경우 보편화돼 있는 지역별 및 자동차 모델별 보험료 차등화 역시 우리나라에는 언제 도입될 지 막연해 보인다. 운전자와 차량의 세세한 특성에 맞게 보험료를 차등화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므로 소비자들의 자동차보험에 대한 인식 역시 왜곡돼 있다. ‘가격이 싸건 비싸건 간에 자동차보험이란 금융상품은 모두 똑 같아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험범죄나 제도적 문제로 보험금이 낭비되고 있는 현실도 개선해 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지난해 지급된 보험금 중 보험범죄로 적발된 금액은 1,025억원. 그러나 손보업계는 보험범죄 등으로 생ㆍ손보업계에서 연간 1조원 안팎의 보험금이 지급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중 교통사고로 위장해 자동차보험금을 빼내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유형임을 감안하면 보험범죄 예방 없이는 우리나라 자동차보험의 질적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 진다. 더욱이 이런 자동차보험을 이용한 보험범죄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등 관련 제도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병원에서 동일한 진료를 한다고 했을 때 자동차보험 진료수가는 건강보험 수가보다 5배 가량 비싸다. 따라서 똑 같은 외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해도 병원은 교통사고 환자를 치료할 경우 보험사로부터 더 많은 진료비를 받을 수 있다. 일부 병ㆍ의원들이 보험사기에 연루되는 사고가 적지 않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분명 우리나라 자동차보험과 그 시장은 왜곡돼 있다. 그 원인은 다양하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출혈경쟁으로 대변되는 ‘영업’과 획일적인 ‘상품’, 보험금 누수를 부추기는 ‘보상체계’ 등 자동차보험과 관련된 모든 요소들이 제대로 된 모습을 찾기 위해서 손해보험업계와 금융당국, 그리고 소비자들까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