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가 잭슨 홍(39)의 개인전 '액토 플라즈마'가 열리고 있는 서울 청담동 갤러리2에 들어서면 '도대체 이곳이 미술을 위한 전시장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계공 혹은 석유 시추작업자의 숨겨둔 방으로 보일 수도 있다. 자동차디자이너 출신인 잭슨 홍의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으면 이해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다. 그는 흉기로 사용되는 야구방망이, 혼자서 구토할 때 쓰는 의자 등을 유리 케이스에 전시하는 방식으로 일상용품을 다른 용도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는 펜치, 절단기, 멍키스패너, 변기 뚫는 공기압축기 등 공구를 소재로 삼았다. 대신 이것들은 곤충 표본용 대형 핀으로 박제처럼 하얀 벽에 걸려 있다. 상상력이 발동하면 흡사 기능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박제로도 보인다. "개인의 뜻대로 안 되는 불안하고 우울한 세상입니다. 벽에 걸린 공구들은 제가 '채집의 대상'으로 삼아 박제함으로써 그 기능을 죽여버린 셈이에요." 조난당한 선박의 구조요청 깃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아프리카 국가 로지디아의 공군 마크, 유럽의 휘발유 운반차량에 붙은 식별기호 등. 불안함과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것들이며 원래 의미는 지워진 채 모호함만 남았다. 닭 벼슬 같은 장식이 달린, 불안하기만 한 플라스틱 안전모에는 '순진하고 낙관적'이라는 영문 문구가 새겨 있다. 전시장 한가운데 녹색의 삼각뿔대 위에 놓인 시리얼 박스와 노랗게 타오르는 불꽃 문양에 대해 "바쁜 아침에 뭐라도 먹어야 하니 '호랑이 기운이 솟게' 잘 먹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그는 "노란 불꽃은 태워버리는 에너지이자 연소되는 영혼"이라며 비관적 시선 속에서 희망의 흔적을 얘기했다. 잭슨 홍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선보였고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전시는 27일까지. (02)3448-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