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해 넘겨… ‘직무유기’ 국회

내년 총선정국… 16代 사실상 마감 16대 국회가 숱한 핵심 현안들을 미제로 남겨둔 채 30일 사실상 마감됐다. 정기국회가 끝난 뒤 즉각 소집된 임시국회 회기가 내년 1월8일까지이지만 정기국회의 최대 과제였던 내년 예산안과 각종 법안들이 이날 지각 처리돼 사실상 16대 국회의 대문(大門)은 닫힌 셈이다. 그러나 국회는 끝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농촌 의원들의 집단 반발로 처리되지 못한 게 대표적인 `직무 유기` 사례. 특히 국회는 헌재가 정해 준 시한 안에 선거법을 개정하지 못하는 바람에 “입법부가 여야의 이해대립과 밥그릇 싸움 때문에 초유의 선거구 위헌 사태까지 초래했다”는 비난과 불명예를 자초하게 됐다. 반면 국회는 여론의 비판이 불 보듯 뻔함에도 불구, 비리 혐의 여야 의원 체포동의안을 이날 모두 부결시켜 `개혁 불감증`, `정치권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샀다. 국제적 현안인 FTA 비준안의 경우 박관용 의장은 내달 초 본회의에서 처리한다고 했지만, 농촌 출신 의원들의 반발이 누그러질 여지가 별로 없어 4ㆍ15 총선 이후로 미뤄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농촌 의원들은 “농어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 충분히 마련된 뒤 비준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총선에서의 표를 의식한 집단행동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각 당 지도부나 FTA비준안에 찬성하고 있는 의원들도 농촌출신 의원 및 농어민단체 등의 눈치를 보느라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총대`를 메지 않고 있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치자금 투명화와 정당구조 개혁 방안 등을 담은 정치개혁법안들도 장기 표류할 개연성이 크다. 내년 초입부터 총선 정국에 돌입한다는 점에서 총선 전 여야의 정치개혁 관련 협상안 마련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행 선거구의 경우 위헌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여야는 어쩔 수 없이 개정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의원정수 등을 둘러싸고 여야의 대립이 워낙 날카로워 “어차피 위헌 상태도 초래됐는데 현역 의원들이 기득권을 최대한 누린 다음 선거에 임박해서야 여야가 합의안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이진동 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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