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으로 번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와 전세계 경기둔화를 타개하기 위해 멕시코 로스카보스에 모인 주요20개국(G20) 정상들은 지난해 11월 칸에서 열린 정상회의 때와 비교하면 분명 다급해진 모습으로 위기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유럽 은행권을 공동 감독하는 '은행동맹' 창설과 국제통화기금(IMF) 재원 확충 등 일부 논의의 진전도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 G20 정상회의에서도 글로벌 리더들은 구체적인 해법을 도출하기보다는 유로존 위기 해법을 촉구하는 선에서 모처럼의 회동을 마무리 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세계 경제 위기 해소를 위한 통합된 리더십을 보이는 대신 각자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해 하는 등 시장의 실망감을 부추기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각국 압력에 발끈한 유럽, "훈계 들으러 온 것 아니다"=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스페인으로의 위기 전이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개막한 G20 정상회의는 3년째 재정위기의 불길을 잡지 못한 유럽에 대한 압력과 성토의 장이 됐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유럽 경제에 발목이 잡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보다 강력한 유럽의 자구노력을 촉구하는 한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동에서도 "유럽의 정치통합을 위한 논의 진전"을 촉구했다.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도 "유로존이 쓸 수 있는 자구안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고 있다"며 "그러는 사이 유럽에서 난 불이 모든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도 앞다퉈 유로존의 위기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각국의 압력과 쏟아지는 비판에 유럽 지도자들은 발끈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 문제에 관해 훈계를 들으러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다"라며 "(유로) 위기의 시발점이 된 것은 북미"라고 반박했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도 "유럽이 문제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며 "위기는 미국을 포함한 각국의 불균형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 실망감만 부추기나=유럽에 대한 각국의 압력은 사실상 추가 지원과 문제 해결 열쇠를 쥔 독일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위기국가의 긴축 이행을 강조하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정상회의 전야 회동에서 메르켈 총리는 G20 참석국이 "각자의 숙제를 해야 한다"며 압력을 일축했다.
이런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스(FT)는 "G20으로부터는 유로존 위기 해결을 촉구하는 것밖에 기대할 수 없다"며 "회담 폐막 전 발표될 공동성명도 유럽 은행동맹이 일부 언급될 수 있지만 지난해 11월 칸 정상회담 때와 별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멕시코 정상회의가 이렇다 할 해법 도출 없이 또 한번의 요란한 정치 무대로 끝날 경우 시장의 실망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21일까지 이어지는 스페인의 국채입찰에서 국채금리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8일 채권시장에서 스페인의 1년물 국채 수익률은 지난달 입찰 당시의 2.985%보다 대폭 오른 4.9%, 10년물 국채 금리는 7.16%로 각각 치솟으며 '적신호'를 내보냈다. 하빈더 시안 RBS의 금리 스트래티지스트는 "G20 정상회의가 결정적인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유럽 당국자가 새로운 위기 대응 수단을 내놓아야 한다고 시장이 촉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U 정상회의에 기대감도=G20 정상회의에서 유로존 위기 해법을 모색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제사회와 시장은 일찌감치 오는 28~29일 열리는 EU 정상회의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데이비드 플루프 백악관 선임 고문도 지난 17일 인터뷰에서 "실질적인 해결의 장은 EU 정상회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메르켈 독일 총리와 몬티 이탈리아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유로존 4대국 정상은 22일 로마에 모여 사전 논의를 펼칠 예정이다. 특히 멕시코에서 진전된 '은행동맹' 논의는 이달 EU 정상회의에서 결실을 맺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FT는 "G20 회의에서 독일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스페인 등의 지도자들이 은행동맹을 기꺼이 지지하고 나섰다"며 "은행동맹 구축 논의가 급격한 모멘텀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EU 정상회의에서 유럽 역내를 넘나드는 대형 은행에 대한 특정국의 통제권을 포기하는 결정이 내려지는 데 대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고 유럽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