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물 폭탄과 기후변화 그리고 하인리히 법칙

유희동 기상청 기후과학국장


올여름은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마른장마 덕분에 강한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도 피하는 듯해 큰 비 피해 없이 지나가나 했다. 그러나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역시 날씨는 심술보를 감추고만 있지 않았다. 지난 8월25일 부산과 창원 등 경남지역에 쏟아진 기록적인 국지성 폭우에 부산은 도시 기능이 마비될 정도의 사태가 벌어졌다. 25일 부산과 경남지역에 쏟아진 비로 기장군의 피해액만도 685억원으로 집계됐고 지금까지 최소 14명이 사망했거나 실종됐다는 사실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런 수해를 겪은 지 열흘도 되지 않은 9월3일에 또다시 기장을 비롯한 경남에 시간당 3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장마가 끝나고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까지 물폭탄 세례를 받은 것이다.

특히 부산 금정구에는 8월25일 오후2시께부터 쏟아진 비가 1시간 동안 130㎜를 기록했는데 시간당 30㎜의 호우가 내리더라도 머리에 양동이에서 물을 붓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물폭탄을 맞은 셈이다. 우리를 더욱 편치 못하게 하는 것은 최근 들어 점차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의 발생빈도가 증가하는 사실이다. 점점 더 강해지고 빈번해지는 기상재해의 원인은 기후변화를 빼곤 설명할 길이 없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징후는 단순히 기온상승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극한 기상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폭우·폭설·폭염·가뭄 등 위험한 기상현상은 늘 있어왔지만 기후변화로 폭우뿐 아니라 다양한 자연현상이 우리의 예상범위를 벗어난 극한값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1대29대300법칙'으로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큰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29개의 작은 사건이 발생하고 300개의 사전징후가 나타난다고 한다. 근래에 발생한 극단적인 자연재해는 이런 하인리히 법칙에 따른 29개의 작은 사건 또는 300개의 사전 징후가 아닌지 걱정스럽다. 기후변화에 대한 현실적인 준비와 대응을 위해 이제는 행동하고 실천할 때이며 기상청을 비롯한 정부부처와 민간기업, 국민 개개인의 노력이 더욱 절실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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