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11·23 연평도 도발] 지금 연평도는… 여관·상점들 문 굳게 닫힌채 유령섬 방불 "불안 커지는데 정부 대응 안이…더는 못살아" 남아있던 주민 200명마저 피란 가기로
입력 2010.11.25 18:19:57수정
2010.11.25 18:19:57
연평도로 가는 뱃길은 사나웠다. 25일 오전11시5분 인천 연안부두를 떠난 인천해양경찰청 경비함 312호는 3~4m의 높은 파도를 헤치고 시속 35노트의 속도로 연평도로 향했다. 외신기자를 포함해 국내외 취재진 170여명이 승선했다. 높은 파고에다 썰물 때여서 행정선과 종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4시간 만에야 대연평도 안목선착장에 내릴 수 있었다.
선착장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선착장 인근에 있는 펜션은 문이 닫혀 있었다. 연평도는 겉으로는 여느 시골 어촌 포구와 다름없이 한가롭고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10여분쯤 걸어 도착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목격한 풍경은 참혹했다. 거리 곳곳이 포격으로 깊게 패었고 반파된 집들은 시커멓게 그을린 채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을 목격하고서야 이 곳이 이틀 전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곳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연평도는 폐허로 변해 있었다. 수협 연평도 어업 복지회관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고 여관과 상점들은 문을 굳게 걸어닫았다. 커피숍 인근의 집은 폭격으로 파괴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포격이 있은 후 연평면 주민 1,400여명 중 1,200명가량이 육지로 빠져나가고 200명도 채 안 남았다. 새마을리에서 만난 이형수(56)씨는 이틀 전 북한군의 포격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는 "오후2시가 조금 지나 해병대 연평부대 7중대에서 포사격 훈련을 했는데 갑자기 마을로 포탄 1~2발이 날아들었다"면서 "처음에는 오발탄인줄 알았는데 빗발치듯 포탄이 쏟아져 전쟁이 났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씨의 가족은 이튿날인 24일 모두 뭍으로 나가고 그 역시 곧 연평도를 떠날 생각이라고 했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는 이향란(55)씨는 이날 오후 입항한 여객선을 타고 연평도를 빠져나갔다. 이씨는 "우르르 쾅쾅하는 소리에 영문을 모르고 있다가 대피하라는 방송을 듣고 방공호로 가는데 또 다시 포격 소리가 나 이제 진짜 죽는구나 하고 하늘만 쳐다봤다"면서 "너무 공포스럽고 불안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포격으로 배전ㆍ송전 시설이 파괴되면서 대규모 정전 사태를 빚었지만 한국전력이 나서 이날 대부분 복구했다. 한전 직원 2~3명이 조를 이뤄 수리를 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SK텔레콤 기지국 2곳과 KTㆍLG유플러스의 공용 기지국 1곳이 파괴돼 통신 불량이었던 이동통신도 복구가 완료됐다고 업체 직원은 설명했다.
옹진군청 직원들이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현지 주민과 전기ㆍ통신업체 직원, 공무원 등이 피해 복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연평도는 당분간 텅 빈 유령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아 있던 주민 200여명마저 모두 인천 피난길에 오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연평도에 남은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연평주민비상대책위원회의 최성일(47) 위원장은 "지금 남은 주민들을 모두 인천으로 나가게 하고 있다. 완곡히 남겠다는 사람들만 빼고 모두 섬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8일 한미 훈련이 예정돼 있어 긴장이 더욱 고조되는데다 날씨마저 추워지고 집도 파손돼 더 이상 기거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민 대부분이 떠나면 군과 해경, 복구작업을 지원할 공무원 등 70여명 만이 남아 쓸쓸한 연평도를 지키게 된다.
황모(53)씨는 연평도에서 계속 살아야할지 고민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의 태도를 신뢰하기 힘들어 더 이상 불안해서 못살겠다는 얘기였다. "북한에서 공격하면 당하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당하기만 하느냐"면서 "정부가 이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서해5도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인적이 드문 연평도의 을씨년스러움은 더욱 짙어졌다. 선착장을 떠나는 배에서 섬을 바라보니 이처럼 작고 평화로운 섬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