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비자금융에서 배운다] <상> "돈보다 소비자가 먼저"

다중채무자 피해 발생 예방 위해
2곳 이상 대출자는 추가대출 자제
금전교육에 年50억엔 집중 투자도


도쿄에 사는 31세의 야마다씨. 그는 술자리를 거절하지 못한다. 술 한잔을 걸치면 매번 다른 사람의 술값까지 계산한다. 용돈만으로는 부족해 자주 돈을 빌린다. 야마다씨는 자신을 변화시켜 아내와 부모로부터 신용을 회복하고 싶었다. 이혼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는 일본소비자금융협회(JCFA) 무료 카운슬링 센터를 찾았다. 카운슬링은 전화상담ㆍ목표설정ㆍ계획작성ㆍ실천의 4단계를 거친다. 야마다씨는 “이혼은 피하고 싶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생각을 바꾼다→부인에게 사과한다→술자리에 안 가겠다고 직장에서 선언한다→용돈기록장을 부인에게 확인받는다→신용과 대화가 회복된다’는 계획표를 작성했다. JCFA는 가계수지ㆍ소비패턴뿐만 아니라 마음과 행동을 바꿀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후 야마다씨는 술자리에 가자는 제의를 거절했다. 용돈도 스스로 관리하고 잃었던 가정의 행복을 되찾았다. 사치를 부리지도 않는데 수년간 빚이 늘어 암울한 미래를 고민하던 스즈키씨도 카운슬링 센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채무해결을 위한 변호사를 만났다. 돈 쓰는 법, 채무개선, 마음과 행동의 변화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 결과 지긋지긋한 빚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일본의 소비자금융시장은 355조원(43조4,000억엔)으로 우리나라보다 10배 이상 크다. 아코무ㆍ다케후지ㆍ아이후루ㆍ프로미스 등은 지난 50~60년대 설립돼 대출금 잔액이 10조원을 넘는다. 대부업법도 우리보다 20년 가량 빠른 83년에 제정됐다. 일본 대부업법 1조는 ‘자금수요자 등의 이익을 도모하고 국민경제의 적절한 운영에 이바지한다’는 것. 대부업체가 소비자를 보호하고 건전한 소비자금융시장 발전에 책임이 있음을 명문화했다. JCFA는 소비자 보호와 다중 채무자 예방을 위한 금융교육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마사히로 하시모토 JCFA 도쿄본부 사무국장은 “협회는 연간 50억엔의 기금을 조성해 다중채무자 무료 카운슬링 사업, 청소년 신용교육 사업 등 금융교육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며 “다중채무자 확산을 막기 위해 업계가 스스로 두 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은 고객에 대해 대출 자제를 결의했다”고 강조했다. 과잉대출 등으로 다중채무자가 늘어나는 것은 고객 개인의 불행을 넘어 대부업체의 수익성 악화, 국가경제의 마이너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윌프레드 호리에 아에루 대표(전 제일은행장)도 “건전한 금융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지만 부모는 돈만 줄 뿐 돈을 어떻게 쓰고 관리해야 하는지 가르치기 힘들다”며 “JCFA는 물론 정부ㆍ학교 등도 적극적으로 금전교육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JCFA는 청소년을 위한 금전교육 게임, 비디오 테이프, 책자 등 다양한 교재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또는 외부강사가 교재를 활용해 학생들에게 돈 관리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다중채무자 예방과 함께 보호와 구제에도 힘을 쓴다. 전국적으로 구축된 무료 카운슬링 센터는 돈을 갚는 데 어려움이 있는 고객을 보호하고 구제하기 위한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도 다중채무자 예방과 금전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양석승 한국소비자금융협회 회장은 “다중 채무자 방지를 위해 두 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은 고객에 대해선 업계 스스로 추가 대출을 자제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금융교육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어 회원사 직원들부터 차츰차츰 교육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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