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규제 전면 재검토해야

SK㈜에 대한 영국계 투자펀드 크레스트 시큐리티즈의 주식매집으로 SK그룹의 경영권이 위협을 받고 있는 사태는 복잡한 출자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의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크레스트의 SK지분이 12.39%에 달해 외국인지분이 10%가 넘으면 공정거래법상 외국인투자기업으로 간주돼 출자총액규제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계열기업의 보유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이 같은 해석은 SK그룹사들이 SK㈜ 주식을 35.7%나 보유하고서도 출자총액한도에 걸려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함으로써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지분이 크레스트에 못미쳐 경영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내린 것이다. 정보통신부도 14일 크레스트가 SK㈜ 지분을 15%이상 취득하면 SK㈜는 외국인으로 간주된다고 유권해석 함으로써, SK㈜ 주식지분 변동으로 SK그룹의 주력기업인 SK텔레콤의 경영권에 적잖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기통신사업법에 국가기간 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은 49%를 초과할 수 없고 초과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의 제한을 가하도록 돼 있다. 이 때의 외국인은 순수외국인 만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분이 15%를 넘는 국내기업도 해당되는데, 크레스트가 실제 확보한 지분은 14.9%이며 앞으로 15% 이상의 지분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이 경우 SK㈜는 외국인으로 간주돼 SKT에 대해 갖고 있는 의결권이 현재의 20.85%에서 8%대로 크게 떨어지지만 경영권은 유지하게 됐다. 그러나 SK㈜를 주력으로 SKT를 지배해온 SK그룹의 영향력 약화는 불가피해졌다. 크레스트의 모회사인 소버린자산운용은 14일 SK주식 매집에 대해 `장기투자` 임을 전제, `보다 높은 수익창출을 가능케 할 사업계획 재조정과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기업지배구조 개혁계획을 위해 경영진과 건설적인 작업을 희망한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상당 수준의 경영관여를 전제로 한 투자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국내 기업의 재무구조와 지배구조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크레스트가 SK그룹의 경영비리를 공격목표로 삼은 것은 아이러니지만 기업들은 이 사태를 투명경영과 주주중시 경영을 위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SK사태에서 나타난 것은 외국계 펀드들이 인수합병(M&A)을 시도함에 있어 외자유치 제도는 물론 국내산업보호 제도까지 치밀하게 연구해 목표달성에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 재벌의 문어발 확장이 낳은 지극히 한국적인 제도인 출자총액규제와 관련해 국내기업의 외국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다시 부각된 만큼 이 제도의 폐지 또는 최소한 외국기업과 동등한 수준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인천=이규진기자 sk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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