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용의자 해외도피 차단해야

지금 현대상선에 대한 산업은행의 4,000억원 대출 사건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한창이다. 이 사건은 현대상선의 김충식 전 사장이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에게 "이 돈은 정부가 쓴 돈이니 갚을 수 없다"고 했다는 엄씨의 국회 국정감사 증언이 발단이 되었다. 발언의 장본인인 김충식 전 사장은 신병 치료차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그는 치료경과를 보아 돌아오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가까운 시일 내에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 이 사건의 의문을 푸는 데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증인이 함구하는 사이에 온갖 의혹만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범죄후 해외도피는 이제 거의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현 정부들어 발생한 여러 건의 게이트 때 마다 핵심혐의자나 증인들이 사건 공개를 전후해 해외로 달아나 진상파악이 안된 경우가 많다. 대우 그룹의 김우중씨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케이스로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채 유럽의 어느 곳에서 은신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세풍사건의 이석희씨도 도피 중이던 미국에서 현지 경찰에 의해 체포돼 본국 송환여부를 결정할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수백억원 대 주가조작사건을 벌인 범인이 가족을 데리고 해외로 도주했다가 입국이 거부돼 송환됐는가 하면, 연예인 비리사건과 관련해 유명연예인 2명이 해외로 도피한 뒤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 해외도피 사건에서 가장 개탄스런 사례는 이런 해외 도주범법자를 잡아오는 것이 임무여야 할 경찰청 특수수사대의 최규성 전 총경이 미국으로 도주한 사건이다. 해외도피가 민간인이나 공직자를 가리지 않고 범죄의 세계에 만연돼 있는 것이다. 정권교체기는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다. 사회적인 기강 해이로 인해 범죄의 유혹이 크고, 감추어진 비리가 드러날 가능성도 커진다. 핵심혐의자나 증인이 해외로 도주하는 일이 앞으로 더욱 빈발할 가능성이 크다. 외국이 범죄자들에게 피난처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도주하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위험한 현상이다. 당국은 범죄용의자에 대한 신병처리를 더욱 기민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해외 도주용의자에 대해서는 인터폴과의 협조를 더욱 긴밀히 하여 체포와 본국송환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일부 사건에서는 범죄 용의자들을 해외로 도피시키는데 정부기관이 방조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당국의 분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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