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6월 11일] 하나가 되는 남아공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앞바다에 있는 로벤섬에는 십수년 전까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정치범이라는 죄목으로 갇혀 있던 수용소가 있었다(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수천명의 수감자들은 탄압받으면서도 축구를 할 권리를 주장했고 마침내 수용소의 허락을 받아 마카나축구협회를 조직해 리그를 운영했다. 18년 동안 이곳에 수감됐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우리는 축구를 통해 저항과 단결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마카나축구협회 소속 레인저스 FC의 주장을 맡았던 제이컵 주마는 12대 남아공 대통령이 됐다. 진입장벽 없는 단순성 축구의 힘 혹자는 축구를 종교로 비유하며 숭배하기도 하고 또 혹자는 축구를 권력처럼 떠받들기도 한다. 진실이건 아니건 간에 축구는 이제 단순히 스포츠를 넘어서 세계인을 묶어주는 글로벌 네트워크이자 돈이고 산업이며 국력과 민족의 힘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막강한 파워를 갖게 된 축구의 제전 월드컵이 사상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 남아공에서 열린다. 특히 로벤섬 수용소 스토리처럼 축구가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남아공으로서는 이번 월드컵의 의미가 더욱 특별하고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세계인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현상에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는 축구에 진입장벽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축구 기량은 훌륭한 스포츠센터 못지 않게 뒷골목 공터에서도 쉽게 습득될 수 있다. 공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성이 축구의 힘인 것이다. 이 단순성은 바로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 아프리카를 더욱 열광시킬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흙먼지 나는 아프리카의 맨땅에서 맨발로 혹은 변변치 않은 신발만 신고 뛰던 아이들이 자라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지금도 그런 꿈을 꾸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축구는 돈이 안 들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희망과 꿈의 동의어다. 지난 1974년 콩고 민주공화국이 아프리카 최초로 월드컵에 출전한 이래 세계 중심으로 도약을 꿈꿔온 아프리카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적어도 축구에서만큼은 더 이상 아프리카가 세계의 변방이 아님을 널리 알리고 싶을 것이다. 더욱이 남아공 월드컵의 성공은 아프리카에서도 세계 규모의 행사를 치를 수 있다는 이미지를 전세계에 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11일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는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은 남아공 최초의 국제 규모 축구 전용 경기장이다. 1990년 감옥에서 풀려난 만델라가 출옥 후 첫번째 민중대회를 연 '민주화의 성지'이자 1996년 아프리카네이션스컵 결승전에서 남아공이 튀니지를 꺾고 우승의 감격을 나눴던 곳이다. 이 경기 직전 만델라는 선수들을 깜짝 방문해 격려했다고 한다. 당시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부텔레지는 "만델라가 90분 동안 조국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고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 선수들도 깊은 감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남아공 사커시티 스타디움에서 흑백 갈등 해소의 불씨가 지펴졌던 1996년 사례에서 보듯 축구는 사람들을 화합시키고 열정ㆍ기쁨을 함께 나누고 적대감을 해소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오랜 세월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주술과도 같은 축구의 비밀이다. 대한민국도 이념 갈등 허물어야 한국은 올 들어 세종시와 4대강 이슈, 천안함 침몰 사건 등으로 이념 대립이 극에 치닫고 지방선거 후 지역끼리 편 가르기가 심화되는 등 갈등과 분열의 늪에 빠져 있다. '하나의 나라, 무지개 아래 자랑스럽게 하나가 됐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남아공 월드컵 기간에 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하나의 나라'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표팀 주장 박지성은 지난달 월드컵 출정식에서 이런 말을 남기고 남아공으로 떠났다. "내가 아는 대한민국은 특별한 힘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투혼(鬪魂)이라 부른다. 나는 그것을 팀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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