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중 깔보는 일본, 왜 자만에 빠졌나

■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미야지마 히로시 지음, 창비 펴냄)
미야지마 성균관대 교수 일본 역사인식 문제 제기
그들만의 근대화 '탈아입구' 유교망국론 찬찬히 비판


독도 영유권ㆍ종군 위안부 등 일본의 도발이 우경화된 아베 내각이 들어선 후 심화되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새로운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했고, 이 중 6종의 교과서에서 독도를 '시마네현 다케시마'로 기술하면서 교과서 왜곡사태로 번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사 연구하는 일본인 학자가 일본 역사관을 비판하는 책을 내놓아 주목을 끌고 있다. 저자인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 교수는 일본의 자국 역사인식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일본이 스스로를 '서구적 근대화의 선구자'로 윗 단에 올려놓고, 주변국은 후진적인 군현제와 유교사상에 찌들은 '계몽 대상'으로 폄하해 동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했다는 얘기다. 일본이 한국, 중국보다 우월하다는 사관으로 아직도 19세기, 20세기의 이런 역사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일본이 스스로를 유럽과 같은 역사적 발전단계를 거쳐왔다고 주장한다고 꼬집는다. 일본에는 중국의 봉건제와 구분되는 서구적 의미의 봉건제가 존재했고, 이것이 19세기 '탈아입구( 脫亞入歐ㆍ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한다)로 상징되는 서구적 근대화를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먼저 이뤘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군현제를 유지한 한국과 중국에 대한 우위를 증명하는 근거로, 나아가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명분으로 이용했다는 것. '봉건제 부재=근대화능력 부재'라는 논리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이시모다 쇼오의 대표적인 저작 '중세적 세계의 형성'은 주요 내용이 충돌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이 일본 내부적으로 중세를 형성할 수 없었던 과정을 논증하면서도, 아시아에서 일본만 중세적인 '봉건제'를 이뤘다고 주장하는 모순을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또 하나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폄하하는 근거인 '유교망국론'도 되짚어 본다. 유학의 도입이나 발전이 모두 늦었던 일본에서는 이를 오래되고 보수적이며 체제 유지를 위한 사상으로 보는 비판적인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우월의식과 결합돼, 다시금 일본의 근대화에 대한 근거로 차용된다는 것.

대표적 학자 후꾸자와 유끼찌는 도덕과 정치가 별개이며, 정치는 도덕으로부터 분리돼야 한다며 유교를 비판했다. 당시 서구의 충격에 꾸물거렸던 청나라와 조선의 근본적인 원인이 유교적 이념이었다고 판단한 그는, 결국 유교 자체나 당시 청ㆍ조선의 체제원리 자체까지도 편파적으로 공격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저자는 중국과 조선이 유교를 이념적 기반으로 소농사회에 적합한 종법질서를 유지하며 긴 세월에 걸쳐 동아시아적 근세화 프로그램을 이어나갔다고 평가한다. 반면 일본은 주자학 이념과 상충하는 무사집단에 의해 군국주의화의 길을 걸으며 근세화를 이룩했다고 분석했다. 단지 유교사상의 영향만으로 누구보다 빨리 근세를 가져왔다는 주장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무엇보다 직접적인 영향관계도 없었던 시기의 서구와 동아시아 사회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서구적 역사관 혹은 역사적 진보가 과연 세계적으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더구나 유럽이 목표가 되는 시대를 넘어, 오히려 유럽적 근대의 극복이 필요한 시점임을 감안할 때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이 억지춘향 격으로 끼워 맞춘 논리도 말이 안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서구'가 지금 이마당에 그럴 거리나 되느냐는 얘기다.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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