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유산 정훈 편저/ HWB 펴냄
사회에서 버려진 고아들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하며 살다 간 한 전도사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윤치호는 지난 1909년 전남 함평군 대동면에서 태어나 51년 한국전쟁중 행방불명 되기까지 42년의 짧은 생을 이웃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살아갔다.
일제치하인 1928년 19세의 젊은 나이로 전남 목포에 복지시설 공생원을 설립, 7명의 고아들로 첫 가족을 이룬 그는 이후의 삶을 더불어 사는 사회 만들기에 투신했다. 그가 터를 닦은 공생원은 올해까지 75년을 거치는 동안 총 3,700명의 원생들을 배출, 사회의 중추로서 활동하는 인재들을 길러냈다. 그 자신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소년가장으로 자랐던 그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신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서울의 피어선 고등성경학원에서 신학을 공부, 전도사 자격을 얻었다.
지금도 거지대장, 고아의 대부, 기인 등으로 불리며 목포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는 그는 범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갔다. 그는 복지사업을 하면서 일제 암흑기에 노방전도등을 통해 일본 천황의 신격을 부인, 경찰에 48차례나 연행 또는 구금돼 고문을 받기도 했다. 그의 못다한 꿈은 일본인 부인 윤학자씨를 통해 장남 윤기에게 이어졌으며 손녀 윤록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사랑의 실천으로 결실을 맺었다. 윤학자씨는 지난 63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목포를 방문하면서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69년 타계시는 목포시민장이 치러졌다.
윤치호씨에 대한 자료를 모아 평전의 형식으로 이 책을 쓴 정훈씨는 한국일보 동경 특파원과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등을 역임했다. 그는 윤씨를 폭력을 거부한 민족주의자로 회고한다. 그는 윤씨의 이웃사랑은 12살 때 부친을 여의며 가난밖에 물려 받은 것이 없는 그가 가난을 일종의 업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본다. 또 그는 어릴 적부터 일제에 농토를 빼앗기며 고향을 등진 사람들을 보면서 생긴 일제에 대한 증오를 기독교적 정신으로 잘 극복했다고 본다. 당시 신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이 자연스레 반일감정에 젖어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가 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정 씨는 “윤 원장이 처음 사회사업에 뛰어들던 때는 고아들은 키워 노비를 삼는다는 사회 상규가 있을 정도로 복지사업에 무지하던 시절”이라며 “그가 세운 공생원은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에 기초했던 만큼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이자 일제에 대한 민족의식의 발로”라고 평가한다.
<한동수기자 best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