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필] 혁명과 요정손님

사람을 바꿈에 있어 혁명과 개혁을 동렬에 놓고 말할 수는 물론 없다. 쿠데타는 요정 손님까지 싹 바꿀 수 있지만 개혁은 그럴 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래서도 안된다. 쿠데타는 애당초 법을 깨고 권력을 잡은 것이니 법의 구애를 받지 않고 구(舊)정권의 요직을 마치 빗자루로 쓸어내듯 한꺼번에 「청소」할 수 있다. 「청소」는 높은 요직에만 그치지 않고 말단 공무원에까지 이르기도 했다.그러나 개혁은 선거에서 승리한 새 정부가 벌이는 사업이다. 사람을 바꾸되 법에 따라야 하고 또 야당과 여론의 동향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설혹 개혁하고자 애쓰는 사람의 눈에 개혁의지가 전혀 없거나, 있다 해도 박약해 보이는 사람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더라도 법을 무시하고 이들을 억지로 내쫓지는 못한다. 모르긴해도 개혁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눈엔 현재의 공직사회가 매우 한심스럽고 또 위험하게 비칠 것이다. 코웃음으로 개혁을 들어넘기는 사람, 입으로는 개혁을 따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면종복배하면서 자리보전에만 급급한 사람, 개혁의지의 유무를 떠나 무능하면서도 탐욕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공직의 중요한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다고 비칠지 모른다. 또 그런 소극적인 반(反)개혁세력 말고도 적극적으로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공직의 요소요소에 뿌리박고 있다고 비칠지 모른다. 개혁은 그 원리를 천명하고 지침을 내리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개혁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 아래의 공직자들이다. 그래서 공직자가 개혁의 실천을 등한시하면 개혁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는다. 그러니 개혁을 주창하는 사람이 공직자의 물갈이없이는 개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공직의 물갈이가 곧 개혁의 척도라고 말하는 것도 일응 이해는 된다. 그러나 그런 물갈이 개혁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첫째 개혁의 내용이 최종적인 것이며 다음 정부에 의해 부인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는 보장, 둘째 새 사람이 끝내 썩지 않고 영원히 새 사람으로 남아 있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경험상 개혁은 반복되어온 것이다. 정태성(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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