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와 출자규제

출자총액규제의 존폐가 논의되는 가운데 대주주의 소유ㆍ지배 괴리도를 기준으로 출자총액규제 여부를 정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서울대의 한 연구소는 괴리도가 낮은 기업부터 출자규제에서 졸업시키자는 입장이고, 한국개발연구원도 유사한 견해를 밝혔다. 괴리도가 크면 지배구조가 나쁘고, 지배구조가 나쁜 기업은 대리인비용이 발생하여 기업성과도 좋지 않다는 논거이다. 이 같은 의견은 출자총액규제의 목표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논의이다. 그간 출자규제의 목표는 다각화 억제, 재무구조 개선, 그룹의 동반 부실화 방지, 경제력집중 억제 등과 같이 수시로 바뀌었다. 출자규제의 이 같은 `문어발` 성격 때문에 대기업들은 규제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괴리도를 출자규제의 명분으로 삼는 것에도 문제가 적지 않다. 우선 소유ㆍ지배 괴리현상이 있다고 해서 대리인비용이나 회사재산의 유출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연성을 이유로 규제하는 것은 밤에는 낮보다 치안이 어려우므로 야간통행을 금지하자고 하는 것과 같다. 소유와 지배가 어느 정도 괴리되어야 적절한지 판단할 수 없는 것도 문제이다. 둘째 소유ㆍ지배 괴리는 출자총액을 규제하더라도 해소할 수 없다. 설령 타회사 출자를 완전 금지하더라도 괴리는 여전히 발생한다. 주식회사는 타인의 자본을 활용하여 사업하는 조직이며, 소유ㆍ지배의 괴리가 주식회사의 유인이다. 또한 소유ㆍ지배의 왜곡은 기업집단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에서나 발생한다. 선거에 3명이 입후보하면 34%를 득표한 후보가 당선되어 100%의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소유ㆍ지배의 괴리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내외부 감시장치를 통해 해결하지 그 원인을 규제하지 않는다. 셋째 소유ㆍ지배 괴리와 기업지배구조는 별개이다. 괴리도가 높아도 지배구조가 우량한 기업이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의 경영성과가 높은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의 주가나 외국인 지분율은 다른 기업보다 높은 경우가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지배구조라는 생소한 개념이 기업을 평가하는 최고의 척도로 자리잡았고, 영미식 지배구조가 그냥 수입되고 있다. 그러나 지배구조는 사업구조나 재무구조와 같이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요소중의 하나일 뿐이며, 투자가들은 지배구조보다 후자를 더 중시한다. OECD가 언급한 것처럼 좋은 지배구조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와 전통에 따라 나라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영미식 지배구조를 기준으로 기업을 규제한다면 `문어발 규제`나 `마구잡이 규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지배구조는 평가자에 따라 편차가 클 수 밖에 없으며, 지배구조가 나쁘다는 이유로 어떤 규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도입한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므로 기존의 규제를 계속해야 한다는 논리도 마찬가지이다. 투자가들의 의식이 영미국가와 현저히 다른데도 이들 나라에서 수입한 제도가 바로 정착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찾는 격이다.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배구조에 관한 법제는 정비되었으므로, 소유ㆍ지배 괴리도를 포함한 기업의 지배구조 내용을 공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많은 기업들은 투자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 경쟁할 것이고, 좋은 지배구조 모델이 계속 개발될 것이다. 괴리도가 높아 자본조달이나 주가 저평가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은 괴리도를 낮출 것이다. 소유ㆍ지배 괴리도나 지배구조를 기준으로 기업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적자를 내는 기업을 규제하는 것과 같다. 적자기업이 이익을 내도록 하는 더 좋은 방법은 규제가 아니라 재무제표를 정확히 공시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은 지금의 수익으로 경쟁을 하고, 다른 기업은 장래성으로 경쟁을 하듯이 지배구조도 기업들이 경쟁하게 해야 한다. <신종익(전경련 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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