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파흐리온, 영국의 SR팔마, 노르웨이의 C맵, 벨기에의 네오세램, 오스트리아의 AT&S 등등.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이들 기업은 전세계에 몰아친 불황파고를 넘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세계에 자신들의 이름을 뚜렷이 새기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KOTRA와 함께 `불황을 극복한 기업들`의 성공방정식을 탐구, 유사한 악조건에 빠진 국내 기업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본다.
오스트리아의 다층PCB(인쇄회로기판) 업체인 AT&S(Austrian Technology & Systemtechnic). 지난 1987년 국영기업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만성 적자에 허덕였지만 94년 민영화이후 불과 10년 만에 세계 3위(매출액 기준) 기업으로 떠올랐다.
이 회사가 이처럼 약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시장에 대한 탁월한 판단과 치밀한 접근 전략을 꼽을 수 있다.
빌리발트 되플링거(Willibald Doeflingerㆍ53) 사장은 “90년대 중반까지 구색 제품에 불과했던 휴대폰용 다층PCB가 앞으로 PCB시장의 대세를 바꿀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 성공했다”고 말했다. 90년대 중반 숱한 PCB업체들은 다층PCB를 소형 전자기기용으로 치부할 뿐 주력제품으로는 생각지 않았다.
“지금처럼 당시도 PCB시장은 공급과잉 상태였다. 가격이나 기술에서 차별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서 눈에 띤 것이 휴대폰이었다.”
휴대폰의 빠른 성장가능성을 확신한 그는 곧 바로 회사의 모든 기술력과 영업력을 다층PCB에 투입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선 이 같은 선택은 이 회사에게 이제 막 급신장하는 차세대 시장을 선점하고 고부가가치를 보장받는 `선두업체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이 회사의 고정고객 명단에는 세계 휴대폰시장의 최강자 노키아는 물론 지멘스 등이 포진해 있다.
AT&S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또 다른 선택도 큰 몫을 차지했다.
“사업을 한창 늘려가던 지난 99년 독일의 지멘스가 PCB부문을 아웃 소싱하기로 결정하고 PCB생산공장을 매각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체없이 독일로 건너가 인수가능성을 타진했다. 결론은 인수였다.”
당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모두 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 생산거점을 옮기던 시점.
되풀링거 사장은 하지만 독일에서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겠다는 역발상의 전략을 선택했다.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지멘스가 아웃소싱하는 기업을 인수하면 지멘스를 비롯해 그동안 지멘스가 관리해오던 대부분의 현지 공급선을 손쉽게 넘겨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독일의 고정거래선을 확보한 것은 물론 브랜드 인지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독일에서 사업을 하는 비용이상의 효과를 뽑아낸 셈이다.
AT&S는 이후 지멘스 등 유럽의 주요 거래망을 확보했다고 판단하기까지 독일 생산기반을 3년 가량을 더 운영했다.
“생산비 절감을 위해 2001년 독일 공장의 설비를 중국으로 이전했다. 노키아나 지멘스 등 주요 수요처가 중국에 현지공장을 구축해 이들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불가피했다. 대신 독일에는 서유럽 물류본부를 신설해 그동안 확보해 놓은 유럽 고객들을 안심시켰다.”
이 회사는 2002년 12월 성공적으로 중국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인도에도 생산기지를 마련했다.
“우리는 고객을 상대하면서 단순히 기술력이나 제품가격만으로 승부하지 않고 물류 등을 포함한 총체적인 구입방안을 제시하는 일종의 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점이 아마도 고객이 우리를 선택하는데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해외투자에서 조차 생산비 절감만을 위한 것이 아닌 철저하게 고객중심의 접근전략을 펼친 것이 성공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아주 최근에 한국을 다녀왔다”며 “한국업체와 협력 가능한 최선책을 타진중”이라는 되풀링거 사장은 “한때는 우리도 경쟁업체들에게 고객을 빼았겼던 경험이 있다”며 말을 맺었다.
[서울경제ㆍKOTRA 공동 기획]
<한동수기자 best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