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편성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주요 이슈들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내년에도 적자예산 편성이 불가피할 정도로 나라의 재정수입 전망은 녹록지 않다. 적자 탈출을 위해서는 긴축까지도 각오해야 할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무 자르듯 예산에 칼질을 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는 게 재정당국자들의 고민이다.
정부의 이 같은 딜레마는 경기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의 뒷받침이 필요한데다 박근혜 대통령의 각종 공약이행에도 적지 않은 나랏돈이 투입되는 탓이다. 취득세율 인하와 무상보육 확대 등에 따른 재정 펑크를 하소연하며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요구도 내년도 예산편성을 한층 난제로 만들고 있다.
따라서 2014년도 나라살림이 성공적으로 편성될지는 ▦적정 세입확보 여부 ▦대형 토목건설과 복지공약 구조조정 여부 ▦효율적인 정부-지자체 간 재원배분 여부 등 3대 관전 포인트에 달렸다고 분석된다.
① 4%대 성장률
경기시그널 좋지만 낙관 못해… 적극 투자유인책 마련이 관건
적정 세입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의 경기흐름에 크게 좌우된다. 국세수입 주축인 법인세의 경우 주로 매년 3월 말과 9월 말에 걷히는데 각각 전년도 12월 결산법인과 당해연도 6월 결산법인이 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올 상반기 경기가 나빴던 만큼 하반기에 경영실적이 호전돼야 내년 3월 법인세수가 양호하게 걷힐 수 있고 더불어 내년 상반기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나면 9월 법인세수도 호조를 타게 된다.
다행히 최근 경기회복의 기대감이 수출ㆍ내수ㆍ고용ㆍ증시 등의 부문에서 고개를 들고 있어 올 하반기 경제성장률은 3%대로 회복될 것으로 주요 투자은행 등은 전망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편성지침에서 전제로 삼은 2014년도의 경제성장률은 4.0%. 최근 이어진 경기회복 기대감이 본격적인 기업들의 투자로 이어진다면 달성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지만 아직은 낙관하기 쉽지 않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도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6%로 내다보고 있는 상황.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하면 재정수입이 1조원 정도 줄어들기 때문에 내년도 4% 성장률 달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투자유인책 마련이 절실하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경제조사본부장은 "최근 고용 등이 살아나는 것은 기업들이 상반기에 미뤘던 투자 프로젝트들을 하반기에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내년에도 투자가 이어질지 여부는 기업들이 2014년도 사업계획을 짜는 앞으로의 두 달여간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규제를 풀고 대내외 경제불확실성을 해소해주느냐에 달렸다"고 진단했다.
② 공약 구조조정
복지는 가급적 원안틀 유지… SOC부문 일부 축소 가능성
정부가 적자살림을 최소화하면서도 경기대응을 위한 적정수준의 재정을 투입하려면 불요불급한 부문에 대한 예산 구조조정이 수반돼야 한다. 특히 대규모 재정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공약사업의 선별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재정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가 내년도에 4대 국정기조사업이라고 명명한 분야에 투입하기로 한 재정은 15조3,000억원 규모.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기반 확충 등을 명분으로 삼은 이들 국정기조사업은 대부분 공약용 프로젝트다. 정부는 해당 지출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재원대책을 통해 17조4,000억원의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세입확충(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7조9,000억원, 세출절감(의무ㆍ재량지출 조정, 국정과제 재투자 등)으로 9조5,000억원을 조성할 수 있다고 기획재정부는 설명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재원대책이 계획대로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지하경제 양성화 등이 과도할 경우 민간에 대한 무리한 세무조사 등으로 이어져 오히려 기업투자와 민간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고 의무지출조정은 관련 법률 등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또한 국정과제 재투자의 경우 내년도에 정부가 잡은 규모가 2조5,000억원에 달하는데 그 개념이 불분명하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최근 '2014년 재정운용 방향 및 주요 현안' 보고서를 통해 "국정과제 재투자에 대한 상세내역 및 구체적인 조정 방법 등이 제시되지 않은 점이 발견된다"며 "면밀한 심의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내년 예산안 편성이 순항하려면 일반 지출사업뿐 아니라 공약사업도 칼질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복지사업의 경우 워낙 박근혜 대통령의 추진의지가 강한 만큼 가급적 원안의 틀이 유지될 것이라는 게 기재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신 여당이 지역구 등의 민원에 밀려 반영한 각종 지방 토목사업 등은 사업 규모 축소나 사업방식 변경, 추진시기 조절 등을 통해 구조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의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철도나 도로 같은 대규모 건설사업은 기재부가 워낙 완고하게 심사하고 있어 재정사업보다는 민자사업으로 돌리거나 일부 시급한 구간만 먼저 개통시키는 방법 등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③지방재정 확충
국고보조율 상향 등 가닥… 인상수준 놓고 대립 여전
재정을 둘러싼 정부와 지자체 간 줄다리기는 일단 지자체의 재정을 확충해주는 쪽으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취득세 영구 인하에 따른 지방세 감소는 지방소비세율을 인상해 보전하는 방식으로 정부와 지자체 간 논의가 진행 중이다. 무상보육 확대에 따른 지방재정 부족은 정부가 국고보조율을 상향조정하는 방식으로 메워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적인 인상 수준을 놓고서는 아직 양측 간 대립이 남아 있다. 지방소비세율의 경우 정부는 6%포인트 인상을 주장하는 반면 지자체들은 16%포인트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무상보육 국고보조율에 대해 정부는 10%포인트 인상을, 지자체는 20%포인트 인상을 제시하는 상태다.
정부는 이밖에도 지방에 대한 교부세 체계를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보통ㆍ분권ㆍ특별ㆍ부동산교부세 중 지자체가 용도 제한 없이 재량껏 쓸 수 있는 보통교부세를 중심으로 체계를 손질하는 내용이다. 박 대통령도 이미 공약으로 보통교부세를 중심으로 지방재정을 형평화하겠다고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