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명분에 약하다. 따라서 화합ㆍ정의ㆍ인권 등의 공동선을 앞세워 구호를 외치면 모두가 공감을 표한다. 동시에 사람들은 실리에 강하다. 때문에 화합을 위해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도와주자고 하면 외면하는 자가 속출한다. 명분에는 찬성하면서도 실천수단에는 반대하는 이런 현상을 일컬어 이른바 `총론찬성ㆍ각론반대`라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모순이다.
`총론찬성 각론반대`는 대개 갈등의 현장에서 발생한다. 갈등을 해소하는 일은 그 속성상 명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갈등해소 그 자체에 반대하면 자질을 의심받게 되고 일방적인 비난에 몰리게 된다. 그래서 총론은 찬성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상황이 순식간에 뒤바뀐다. 추상적인 총론과 달리 구체적인 각론에서는 이해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누구나 손실을 뻔하게 알면서도 이를 감수하려 하지는 않는 까닭에 각론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확연하게 엇갈린다. 그래서 각론은 반대로 흐른다.
우리 사회는 오랜 세월 격동의 시대를 거쳐왔다. 그 과정에서 사회집단간 다양한 형태의 갈등관계가 생겨났다. 남북간, 지역간, 노사간, 세대간, 이념간 갈등 등이 그것이다. 이런 갈등관계를 풀지 않고는 건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 따라서 갈등관계 해소는 우리국민 모두가 찬성하는 명분이고 총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관계가 봉합되기는 커녕 오히려 증폭되어 온 것이 그간의 사정이다. 각론을 만드는 과정에서 각기 자기 집단의 이익고수에 지나치게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의 봉합은 결국 기득권의 양보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갈등의 당사자가 각기 일정량의 기득권을 양보하면 그 만큼에 해당하는 각론의 찬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만약 갈등관계가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하면 있는 자의 양보가 선행될 수밖에 없다. 없는 자는 양보할 만한 기득권 자체가 제한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보 없는 갈등은 결국은 모두의 파국으로 진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우리사회에 22가지 유형의 대표적인 갈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내년 안에 갈등해소 방안을 찾아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했다. 그간의 해묵은 집단이기주의가 이번에야 말로 양보의 미덕으로 대체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병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