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개월. 1929년 시작된 세계 대공황이 지속된 기간이다. 다소 짧게 여겨지지만 경기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데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이렇게 봤다. NBER가 진단한 최장의 불황은 65개월. 1873년부터 6년간 지속됐다. 불황기간을 114~176개월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장기공황(the Long Depression). 1873년 일어난 장기공황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 ‘대공황보다 심각했다’는 평가와 ‘생산과 소비가 성장했기에 공황 축에 끼지도 못한다’는 시각이 상존한다. 분명한 점은 주가폭락으로 시작돼 전세계가 한꺼번에 홍역을 앓았다는 점. 1873년 5월9일, 빈 주가가 폭락하면서 세계경제가 동반침체에 빠졌다. 빈 주가폭락은 독일이 프랑스에서 받은 전쟁배상금이 국경을 넘으며 과잉 유동성으로 이어진 후유증이었으나 마침 영국과 미국 등도 철도 버블을 안고 있었던 터. 순식간에 파장이 퍼졌다. 공황을 맞아 독일은 연금제도를 도입해 노동자들을 진정시켰다. 미국에서는 거대 독점기업과 노동조합이 동시에 생겨났다. 경제난 속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유대인 박해가 심해졌다. 각국은 대외팽창에서 탈출구를 찾았다.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가세한 식민지 경쟁은 새로운 시장을 열고 경제를 되살렸으나 결국 전쟁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세계적 불황이 최초의 세계전쟁인 1차 대전을 낳은 셈이다. 문제는 작금의 글로벌 경제위기가 대공황보다는 장기공황과 닮은 꼴이라는 점. 버블이 그렇고 단일자본주의 체제라는 점이 그렇다. 얼마나 더 긴 터널을 지나야 할지 아득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IBM이나 GE 등과 같이 장기공황 시기에 태동해 살아 남은 세계적 기업도 적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