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사람들은 「1999년의 삼성전자」를 「1995년의 삼성전자」로 오해한다.삼성전자가 올들어 사상 최대인 3조원대의 순이익을 기록할 것이란 소식에 접하고 단지 D램 반도체가 호조를 보여 노다지를 캐는 것쯤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나머지 사업부문, 특히 가전부문은 시장개방으로 외국 가전제품의 공세 속에서 반도체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겨우겨우 적자를 면하고 있거나 여전히 적자행진을 벌이는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2년 전의 삼성전자였다면 몰라도 지금의 삼성전자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올해 삼성전자의 반기 순이익은 1조3,429억원. 연말이면 최소 3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월 평균 2,500억원가량의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95년 삼성전자가 2조5,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을 때는 오로지 반도체호황에만 의존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양한 수익창출원을 갖춘 안정적인 경영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삼성전자의 구조조정작업의 실무를 총괄했던 김인수(金寅洙) 상무의 말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3대 사업군 가운데 반도체의 올해 매출 비중은 35%에 불과하다. 나머지 25%는 정보통신기기이고, 40%는 가전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반도체와 정보통신기기는 올해 놀랄 정도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적자사업이던 가전부문도 올해 3,500억원가량의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같은 수익구조는 지난 2년에 걸친 철저한 구조조정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삼성측 설명이다.
삼성전자가 펼친 구조조정의 백미는 재고관리다.
97년말 삼성전자의 부채비율은 296%. 설상가상으로 원화가치가 급락하면서 3조2,000억원에 달하는 환차손마저 떠안고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연이율 17~18%를 웃도는 살인적인 고금리 구조아래 삼성전자 역시 당시 모든 기업처럼 개미같이 벌어봤자 이자갚기도 벅찰 정도였다.
게다가 실적을 중시하는 영업방식에 따라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대책없이 영업장에 내보내다보니 덤핑압박만 높아져 제값을 받기가 어려웠다.
이를 타개한 것이 「수도꼭지 잠그기」전략.
상품이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마지막 단계인 국내외 영업 현장의 재고물량을 더 이상 늘리지 않도록 꽉 묶어둔다는 것이 골자다. 말은 쉽지만 영업부서나 해외 현지 영업망의 엄청난 반발을 극복해야 했다.
환율이 1달러당 1,800원정도하던 시절인데다 밀어내기식 수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던 당시의 상황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이어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었다.
尹사장은 『재고가 더이상 늘어나면 사표를 받아내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며 실제로 연말 전 영업 현장을 점검하며 재고량 조사를 실시해 회사 방침을 따르지 못한 직원들의 사표를 수리하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털어놓았다.
영업 현장에서 더이상 물건을 받지 않자 공장에서는 생산량을 줄여야 했다. 수원공장은 98년 한 때 공장 가동율이 50%대로 떨어졌었다. 물건이 많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제값받기가 정착됐다. 또 유휴설비와 과잉인력이 파악되면서 과감한 거품제거를 펼칠 수 있었다.
97년까지 국내외 합해서 8만4,000명이던 고용인력은 작년말 2만5,000명이나 줄어들었으며 올해도 5,000명가량이 줄어들어 5만5,000명선이 됐다. 또 97년말 4조4,000억원(두달 공급분)에 달하던 재고물량이 올해는 2조6,000억원(한달 공급분)으로 줄어들었다.
삼성전자 구조조정의 또 다른 줄기는 「돈안되는 사업에서 철수하기」.
전력반도체, 중전기, 무선호출기 등에서 손을 뗐으며 총무, 운전 등 단순 기능직은 분사를 통해 철저한 아웃소싱 체제로 전환했다. 최근 2년 사이 15개 사업부문 철수와 42개 사업부문 분사화 등 무려 57개사업을 정리해 나갔다.
구조조정을 통해 모아진 자금은 거의 전액 부채 청산 등에 투입됐다. 97년말 20조8,000억원이던 차입금은 99년 상반기 8조4,000억원으로 줄어드는 등 이자부담이 한달 평균 1,000억원이상 줄어들었다.
삼성전자는 현재 1달러당 1,000원대의 환율에서도 버틸 수 있는 상품 경쟁력을 구축해 놓았다고 자신한다. 구조조정의 결과 반도체가 돈을 벌어주지 않아도 다른 품목에서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는 이야기다.
김형기기자K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