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北工程의 노림수

옛날 수나라 양제와 당나라 태종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요동(遼東)은 원래 한사군(漢四郡)의 땅이니 중국에 귀속하는 게 당연하다”며 “당장 요동을 내놓고 국왕이 직접 내조(來朝)해 무릎을 꿇으라”는 협박을 일삼았다. 고구려와 중국의 근 1세기에 걸친 전쟁은 이렇듯 고조선을 멸망시킨 침략정권인 한사군을 중국의 역사에 귀속시키는 역사왜곡에서 그 출발점을 삼고 있다. 중국의 역사왜곡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뿐더러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고구려사가 중국의 한 지방정권에 불과하다는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놓고 나라 전체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연구중심이 최근 출범시킨 대형 연구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은 고구려가 중국에 일시적으로 조공을 바쳤다는 사실에 호들갑을 떨면서 중국의 지방정권에 불과하다는 억지주장에 색칠을 하는 국책 연구사업이다. 무려 3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니 요즘 중국이 돈을 많이 벌기는 버는 모양이다. 주몽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을지문덕 등 고구려의 위인열전을 통해 웅혼한 민족혼을 배워왔던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구려가 중국 지방정권이라면 남진(南進)정책을 폈던 장수왕과 연개소문 등은 민족의 영웅에서 조국을 침략한 오랑캐로 뒤집어지는 셈이니, 키워줬던 부모님이 알고 보니 부모를 죽인 원수였다는 삼류 드라마도 아니고 왜곡도 보통 왜곡이 아니다. 고구려가 중국정권이라면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동생 `부여온조`가 세운 백제는 또 어떻게 되는가. `새끼 중국정권`이라는 얘기인가. 또 신라와 가야는 `임나일본부`가 있던 땅이라는 일본측 주장과 만나면 고구려ㆍ백제ㆍ신라는 남의 땅에 둥지를 튼 사기 정권이 되는 셈이니, 그 후손인 오늘의 한국인들은 말 그대로 남의 집 안방에서 은혜도 모른 채 수천년간 염치없이 살아온 셈이다. 문제는 사실적(史實的)인 측면에서 보면 중국의 역사왜곡이 언제나 그렇듯이 침략야욕과 밀접하게 연결돼왔다는 점이다. 중국 학자들은 비단 고구려뿐만 아니라 고조선에 대해서도 역사왜곡을 일삼았다. 중국 역사학의 고전인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고조선의 기자(箕子)는 은나라의 망명 귀족이요, 위만(衛滿)은 연나라 때 관리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써넣고 있다. 한나라 관리인 사마천이 침략정권인 한사군의 역사적인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 역사를 왜곡했음은 물론이다. 만약 기자나 위만조선이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면 은나라에서 사용됐던 갑골문이 고조선 지역에서도 발견돼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들이 없고, 동북아시아의 청동기문화 역시 비파형(琵琶形) 동검문화로 황하 지역과는 근본을 달리하고 있다. 원명(元明) 교체기에는 명나라가 청천강 이북은 중국 땅이라며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설치다가, 당시 고려에서 요동정벌론이 비등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적도 있었다.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비하하는 호칭으로 `가오리팡즈(高麗棒子)`라는 말을 사용한 게 천년이 넘었다. 지금도 중국 땅에서 현지인들과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고려봉자`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다. 사실 고구려라는 이름은 `삼국사기` 등 우리 역사서에서 정착된 용어이고 중국측 사서에서는 태반이 고구려라는 호칭 대신 `고려`라는 국명을 더 많이 써왔다. 이렇듯 고구려나 고려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정권이라는 뜻이 명백한데도 이제 와서 고구려는 중국정권이고, 고려는 한국정권이라니 이쯤되면 중국측 역사왜곡이 품위를 잃어버린 형국이다. 문제는 중국이 역사왜곡을 다시 시작한 의도이다.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때 중국이 개입할 수 있는 역사적 명분을 축적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기 때문에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언제나 역사왜곡은 침략전쟁의 도구로 이용돼왔지 단순한 학술논쟁 차원에서 이뤄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배척한다 하여 국사를 대학입시에서도 선택과목으로 끌어내리고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비난하는 신문기사에서조차 옛 고구려의 영역을 묘사하는 글에서 `집안(集安)` `요동` 등의 호칭을 `지안` `랴오둥` 등 중국어 발음으로 읽어주니 요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용웅 문화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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