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마저 혼탁/온종훈 기자(기자의 눈)

「영남배제는 대선필패」라고 적힌 피켓을 비롯 무수하게 휘날리는 플래카드, 조직적으로 동원된 운동원들의 어지러운 연호와 환호, 귀를 따갑게 하는 핸드 마이크와 색종이 폭죽….신한국당의 경선 합동연설회는 한판의 「합동서커스」가 되어버렸다. 4일째 치러진 9일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대구·경북 합동연설회는 대의원들의 선택을 가로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자유경선인데도 무리한 세경쟁 때문에 연설회장 입장이 힘든 「신한국당 대선주자 합동서커스」에 다름없었다. 행사시작 2시간 전부터 「서커스장」 입구 계단 한편에는 압도적인 지지세 상승이 아쉬운 이회창후보의 남녀 당원 3백여명과 이수성후보의 동생인 이수인 민주당의원의 제자 1백여명, 그리고 박찬종후보 지지자인 서훈의원 지구당당원 1백여명 등이 시골장터를 방불케 했다. 이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법석대는 서커스장 입장객처럼 때때로 서로를 밀치며 몸싸움까지 벌일 태세여서 지켜보는 눈길을 안타깝게 했다. 이날 연설회의 대혼란은 박고문이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고 나설 때부터 감지됐다. 박고문은 이 자리에서 『이미 후보진영마다 대의원을 상대로 수천만원대의 금품수수와 흑색선전 등 유례없는 불공정행위가 일어나고 있다』며 김영삼대통령에게 검찰수사 착수를 촉구하는 공개건의를 했다. 대선자금 논란의 축소판이 당내 경선에서도 공개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날 연설회장 안은 밖의 소란과는 달리 서커스단 곡예처럼 아슬아슬한 경선주자들의 정치적 발언을 듣느라 차분하기조차 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지역정서를 고려한다는 명분하에 무분별한 박정희전대통령 예찬론을 펴고 친인척을 들먹이며 TK와의 인연을 내세우는 모습에 또다시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구시대정치의 상징이라할 수 있는 금품수수설과 지역감정 유발, 무책임한 지역개발론 등이 재현되고 있는 신한국당의 당내 경선을 보면서 오는 12월 대선이 어떻게 치러질 것인지 눈에 선해 안타깝기조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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