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지표 곳곳 빨간불 ‘모래바람 후폭풍’ 심각

사막에 부는 거친 모래바람만큼이나 이라크전쟁이 미국을 비롯, 세계경제의 전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발표된 미국의 각종 거시경제지표에는 이미 빨간불이 켜져 1ㆍ4분기 미국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지난 3년간 미국경제를 지탱해온 소비와 부동산 지표들은 이제 정점을 지나 서서히 가라앉고 회복의 싹을 보이던 투자지표도 다시 꺾이고 있다. 최근 발표된 거시자료는 전쟁 이전에 조사된 것이어서 전쟁 이후인 3~4월의 경제지표들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와 관련, “이라크전쟁이 장기화하면 세계경제 회복이 늦어지고 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라크전쟁이 미국 거시지표에 직접적 타격을 준 것은 소비 부문이다. 뉴욕 소재 민간 연구기관인 컨퍼런스보드는 3월 소비자신뢰지수가 62.5로 전달의 64.8보다 하락, 또다시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월 소비자신뢰지수는 전월보다 무려 14포인트가 하락, 이라크전쟁으로 인해 미국인들이 집에 칩거, 소비활동을 자제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소비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2를 차지하며 지난 3년간 미국경제가 29년 이후 최대 증시거품이 꺼지는 가운데서 완만하게 둔화한 것도 미국인들의 소비가 강력하게 유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비거품마저 전쟁을 계기로 꺼지기 시작하고 있다. 전미은행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ㆍ4분기 신용카드 연체율은 4.1%로 전분기에 비해 0.1%포인트 상승했으며 이는 90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개인파산이 증가하는 것은 기업 부문에서 대량 해고가 발생, 개인소득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소비와 함께 미국경제 둔화를 완충했던 부동산시장도 올초를 계기로 정점을 지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상무부의 발표에 따르면 2월 미국의 신규주택 판매건수는 전월 대비 8.1% 급락, 2개월 연속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전미부동산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기존 주택거래도 2월에 한달 전보다 4.3% 하락했다. 지난달에 미 동부 지역에 폭설이 내려 부동산 거래에 지장을 줬지만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거래가 부진해진 것이 주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아직 미국 주택가격이 하락하지 않고 있고 거래량이 지난해보다 높은 과열 상태이지만 이제 주택시장도 정점을 지나 식어가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연초 의회증언에서 “과열된 주택시장이 올해 냉각되고 주택담보융자(모기지) 금리의 하락이 둔화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의 부동산시장은 2001년 경기침체시에도 상승, 주가하락으로 인한 미국인들의 재산감소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주택시장이 냉각될 경우 소비위축ㆍ경기위축의 악순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제조업 부문의 위축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미 상무부가 밝힌 2월 내구재 주문량은 전월 대비 1.2% 하락했다. 군수품을 제외할 경우 하락률은 2.7%로 껑충 뛴다. 내구재는 자동차ㆍ가전제품 등 대형 소비재로, 이 주문량은 제조업의 활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지난해 하반기에 회복조짐을 보였던 미국 제조업이 전쟁 와중에 다시 가라앉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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