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15일(현지시간) 대선 결선투표가 미첼 바첼레트(62)의 압도적 승리로 끝나면서 중남미 정치권을 휩쓸고 있는 여풍(女風)이 다시 한번 주목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4개국(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코스타리카)의 대통령이 여성으로 채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외신들은 "'마치스모(남성우월주의)의 요새를 여성들이 접수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라틴아메리카는 마치스모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 중 하나로 통용될 정도로 여성의 권리 문제가 심각한 대륙으로 꼽혀왔다. 최근 유엔 여성기구 조사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 여성의 69%가 남편 혹은 자신의 남자친구로부터 물리적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고 성폭력 피해를 본 여성도 47%에 달한다.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되는 이른바 '페미사이드' 가 가장 빈번한 국가 25곳 중 10개국이 라틴아메리카다.
지난 2006년 3월부터 4년간 한 차례 대통령을 지낸 적이 있는 바첼레트는 이날 62%의 득표율로 보수우파 연합의 여성 후보 에벨린 마테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바첼레트는 이미 대선 유세과정에서 개헌과 교육·조세제도 개혁, 사회통합 노력을 약속했다. 전 보수정권은 경제성장 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빈부격차 확대 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바첼레트 외에 남아메리카에서는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각각 대통령직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카리브해 연안국가로 시선을 넓히면 라우라 친치야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여성이며 자메이카와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선 각각 포르티아 심슨 밀러, 캄라 페르사드비세사르가 '여성'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마초대륙에서 여성 정치인이 약진한 데는 1990년대 초 아르헨티나가 라틴 국가 중 가장 먼저 여성할당제를 도입하면서 선구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당시 아르헨티나가 의회의 30%를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규정을 만든 후 이웃 10여개국이 유사 법률을 채택했고 이 덕분에 라틴아메리카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은 현재 24%에 달하고 있다.
다만 여성 정치인의 약진이 이들 사회 전반의 여권신장으로 곧장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는 "국가 헌법에 이미 명시된 권리를 이들 대륙 내 많은 여성들이 실제로 누릴 수 있을 때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