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총리 아시아통화기금창설제의 왜 나왔나

지난달 28일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의 아시아통화기금(AMF·ASIAN MONETARY FUND) 창설제의를 한낱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상환 압력에 시달리고있는 정부는 한일(韓日) 중앙은행간 통화스와프 계약을 통해 최소 50억달러의 외화를 확보하는등 향후 일본의 역할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입장이다. 金총리의 발언을 「AMF 설립」 자체로 이해하기 보다는 한일 양국이 유대를 강화, 외환위기 재발에 대비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사전정지작업으로 이해하는게 더 정확하다는 분석이다. ◇金총리 발언이후 = 파문이 확대된 지난 29일 金총리는 『아주 기초적인 생각을 가볍게 얘기한데 불과하다』며 한발 물러섰고 30일 청와대와 재정경제부는 『기존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재경부 김우석(金宇錫)국제금융국장은 『金총리가 중장기적 비전을 얘기한 것으로 안다』며 『IMF와 세계은행(IBRD) 기능을 강화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金국장은 『AMF는 지난해 9월 홍콩에서 열린 IMF총회때 일본과 아시아국가들이 IMF를 보완하기 위한 지역금융협력기구로 제의한 것』이라며 『당시 우리나라 등 아시아 국가들이 적극적인 지원입장을 미국과 IMF의 반대로 AMF의 설립은 성사되지 못하고 대신 IMF에 SRF(준비보완제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 IMF총회때 새로운 국제금융체제가 논의됐으나 결국 기존 체제의 기능을 보완하는 쪽으로 정리가 됐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정부가 AMF와 관련된 입장을 바꿀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지원(朴智元) 청와대대변인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의 이후 정부 입장이 바뀌거나 재정리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시 일본의 AMF설치 제의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과 별개로 운영되는 것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AMF창설 제의의 실제 배경 = 金총리는 30일 일본 규슈(九州)대학에서 특강을 통해 『아시아의 문제를 아시아의 손으로 먼저 해결하기 위해 AMF 창설문제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다시 이 문제를 거론했다. 또 『아시아 국가들의 여건상 이 문제는 현실적으로 일본이 앞장서서 발의하고 이끌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이 아시아의 리더로서 지역내 협력강화를 위해 재원을 부담해 가면서 앞장선다면 우리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언론은 金총리 발언을 대서특필하며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특히 金총리가 아시아 경제위기 해소를 위한 일본의 역할을 강조한 사실을 부각시키고있다. 한마디로 반갑다는 분위기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미묘한 사안을 줄곧 꺼내는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정부 일각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1월까지 만기도래하는 긴급지원자금 37억5,000만달러의 상환을 압박, 우리의 외환수급 상황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주목하고 있다. 정부는 아직도 불안한 국제금융시장 동향을 고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가급적 IMF 자금의 상환을 미루려는 입장이지만 상황이 만만치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젠 어떠한 외부변수에도 불구, 외환위기를 겪지않으려면 미국과 IMF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보완장치로서 일본을 최대한 활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있다. 일본 주도의 AMF 창설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金총리의 발언을 해프닝으로 묻어두기 어려운 이유다. ◇정부의 향후 일정 = 정부는 2일 방한하는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 당국자들과 중앙은행간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아시아국가에 대해 300억달러 지원을 약속한 미야자와플랜의 사전점검을 명분으로 내세우고있지만 실제론 우리 정부가 마련해놓은 한일양국 중앙은행간 통화스와프계약 제의를 본격 검토하는 자리가 될 전망. 양국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를 서로 맞바꾸는 방법으로 위기때 즉시 자금을 빌려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안전한 외환위기 방지장치는 없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중앙은행간 스와프계약이 미야자와플랜의 실천방안임을 분명히하고있다. 당초 12월중 일본에서 첫 실무회의를 가질 계획이었지만 일정을 변경한 것. 이에 대해 재경부 金국장은 『대장성 일행의 방한은 잠재적 차입국인 우리나라의 자금수요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한편 金총리의 발언이 중장기적으로 보아 정부의 공식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있다. 「아시아 역내 협력체 운용」이라는 원칙에 충실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金총리는 최근 예브게니 아파나시예프 주한 러시아대사를 만나서도 AMF에 러시아가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쿠오카=황인선·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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