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휴가때 투자유인책 준비하라/한국 외환위기 타개

◎미 펀드매니저 충고/내달 2일 이전에 개혁프로그램 등 제시를/부채규모 공개 등 정책투명성 확보도 시급【뉴욕=김인영 특파원】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은 한국경제가 이번 연말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연말까지 하루하루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를 갚아나가는데 온통 매달려 있지만 무엇보다 막대한 국제자본시장을 상대로 좋은 소식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월가의 투자자들은 지난 15일부터 휴가에 들어갔고 이번주에는 거의 대부분이 객장을 비운 채 플로리다, 카리브해의 휴양지로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랩톱을 휴대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다우존스 뉴스와 블룸버그 뉴스, 로이터 통신을 챙기며 투자 호재를 찾기 위해서다. 한국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도 주요 관심사다. 휴가중에는 투자를 보류하는 것이 그들의 관례지만 좋은 감이 나오면 언제라도 온라인을 통해 사자 주문을 낸다. 월가 증권회사의 한 간부는 『한국은 그동안의 악재를 털어내고 호재를 쏟아부어 투자 마인드를 바꾸는 시기로 월가의 휴가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경제가 연말까지는 모라토리엄(대외지불유예)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 일본 등 채권국들이 한국이 국가 파산을 선언할 경우 아예 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 베이스에서 브리지론(시한부 단기융자) 등을 일으켜 한국의 국가부도를 막을 것이라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IBRD)도 23일 한국에 대한 긴급융자를 조기 지급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연말을 넘겨도 1월에 막대한 외채가 만기에 돌아오기 때문에 자칫하면 빚갚기에 연연하다 언젠가 모라토리엄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뉴욕증권거래소가 새해 오프닝벨을 울리는 1월 2일 이전에 투자를 유인할 호재를 펀드매니저 데스크에 수북히 쌓아놓을 것을 월가 투자자들은 권하고 있다. 월가는 한국경제의 호재가 될 수 있는 항목으로 ▲새 경제팀이 구체적인 장단기 경제전략을 제시하는 것 ▲국제시장에 맞게 과감한 경제개혁과 개방조치를 단행하는 것 ▲주요 재벌들이 경제파탄의 책임을 인정하고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선언하는 것등을 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펀드매니저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재경원 장관과 한은총재 등 새 경제팀을 하루 빨리 구성해 구체적인 경제플랜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경제팀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국제시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기아자동차를 국유화한 것, 서울·제일은행의 부채를 정부출자로 전환한 것, 은행부채를 정부가 보증한 것 등이 그것이다. 국제마켓에서는 림창렬경제팀에 대해서도 불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 펀드매니저는 『새 경제팀이 세부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경제운용방향을 밝히면 하루만에 투자자들이 움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월가 사람들은 한국정부가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외환보유액은 이미 들통난 거짓말이었고 해외부채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고 한다. 한국정부는 총외채가 1천억달러라고 밝혔지만 비즈니스위크지는 최대 1천5백억달러에 이를지도 모르겠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정부가 내년 1월까지 상환할 단기외채가 1백50억달러라고 밝혔으나 전문가들은 이를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가에서는 부채규모를 감추는 것이 오히려 투자기피를 초래하고 있으므로 한국정부가 솔직히 대외부채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23일 뉴욕 금융시장에서 산업은행 채권의 가산금리는 하루전보다 2백bp 오른 9백bp에 거래됐고 일부는 1천4백bp까지 치솟았다. 미재무부채권 금리가 6%선임을 감안하면 한국물은 20%의 고금리로 움직인 것이다. 월가 사람들은 『한국이 3개월 전에 시장원리를 받아들였으면 위기를 넘겼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이 아직도 손을 쓸 여지는 있다』면서 한국인들이 시간의 촉박함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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