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린 채무자가 보유한 주택으로 이를 갚는 '대물변제'가 주택의 편법증여나 탈세에 악용될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법제처가 대물변제계약은 부동산거래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대물변제계약과 일반매매계약을 뚜렷하게 구분해낼 방법이 없어 자칫 주택 실거래가 신고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법제처는 대물변제 거래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질의에 '부동산거래신고를 해야 하는 매매계약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법령해석을 내렸다. 매매계약은 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속하고 상대방이 그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행위지만 대물변제계약은 채무자가 채권자의 승낙을 얻어 본래의 채무를 대신해 물건으로 갚는 것으로 의미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법제처는 "매매계약의 통상 의미보다 확대해 대물변제계약의 경우까지 매매계약에 포함한다면 유추해석에 의해 행정제재 처분인 과태료 처분의 적용범위를 부당히 확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은 강제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법 적용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만큼 대물변제계약을 신고하지 않더라도 국토부가 처벌할 근거가 약해져 부동산 거래 신고제의 구멍이 생긴 셈이다.
봉천동 S공인의 한 관계자는 "대물변제계약이 신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 정상적인 매매계약도 대물변제계약으로 가장해 실거래 신고를 피해갈 수 있다"며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 신고에 관한 법률'에서는 부동산 거래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국토부가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해 대물변제계약을 신고 대상에서 제외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앞으로 대물변제계약을 신고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람은 소송 등을 통해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물변제계약이 신고 대상에서 제외될 경우 이를 불법증여나 탈세에 악용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예컨대 시세가 10억원인 아파트를 대물변제계약으로 처리할 경우 신고를 하지 않아도 돼 가격을 허위로 기재해 세금을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매매계약과 대물변제계약을 구분할 근거가 없는데다 신고 대상에서 제외되면 거래 자체가 존재했는지 여부조차 파악하기도 힘들어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지난 2005년 이후 정착된 실거래가 신고제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라며 "부동산 거래 통계가 부정확해지면 제대로 된 정책도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주무부처인 국토부 역시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며 "신중하게 검토해 늦어도 오는 7월까지는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