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T-LCD 제조업체인 시스컴이 최종부도로 17일 코스닥시장에서 퇴출판정을 받았다. 이날은 이라크전 위기감이 점증되는 가운데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충격이 급기야 카드채 발행중단 사태를 초래, 카드사를 살리기 위한 긴급처방이 쏟아진 하루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스컴 부도는 그저그런 코스닥기업이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부도가 난 흔한 사건으로 묻혔다. 하지만 시스컴의 몰락은 SK글로벌의 대규모 분식사건 못지 않게 우리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2001년 11월 금융감독위원회는 시스컴이 2000년초 코스닥등록을 앞두고 99년도의 매출액과 당기순이익 등을 과대 계상했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분식회계로 코스닥예비심사를 통과했고 거짓된 재무제표를 앞세워 투자자들로부터 62억여원의 돈을 끌여들었다는 얘기다.
때문에 시스컴이 가짜 실적으로 코스닥시장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시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스컴을 당장 코스닥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투자자 보호란 명분에 밀려 시스컴은 그대로 남았다.
물론 시스컴의 99년 회계분식과 지금의 부도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정밀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분식을 저지른 기업이 치러야 할 대가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똑같이 혹독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대기업에 비해 분식이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은 것이 중소기업의 회계 현실이다. 코스닥 예비심사를 통과한 이오정보통신의 회계부정이 폭로돼 등록승인이 취소되고 대표이사가 구속된 게 불과 두어달 전이다. 2년도 안돼 제2의 시스컴이 나온 것을 보면 중소기업의 회계 불투명성은 여전한 듯 싶다.
취재 현장에서 실제 매출액과 신고한 매출액을 따로 구분해 기자에게 설명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최근에 만난 한 IT기업의 재무담당자(CFO)는 허위매출을 만들어내는 교묘한 수법을 자세하게 들려주기도 했다. 또 “재무제표를 잘 만들어 이익이 많이 난 것처럼 조작하는 게 영업을 열심히 뛰는 것보다 더 낫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중소기업 사장들도 한둘이 아니다.
사나운 폭풍처럼 경제를 뒤흔드는 대기업의 분식회계 사건에 비해 중소기업의 거짓회계는 일견 찻잔 속의 태풍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산업의 뿌리인 200만 중소기업들이 관행처럼 장부조작을 일삼는다면 한국경제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잇따른 분식회계 사건 등으로 신뢰가 상실돼 어느새 붕괴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코스닥시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규진 기자(성장기업부) sk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