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재정수지가 흑자인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관리재정수지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2% 내외의 적자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가부채 규모를 봐도 그렇고 아직 재정은 건전합니다." 우리 정부의 재정건전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되풀이했던 말이다. 각종 기금을 합친 통합재정수지는 늘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역시 3조원이 넘는다. 재정적자(관리대상기준) 규모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통합재정수지가 흑자라서 아직은 괜찮다는 최 경제부총리의 말이 정확한 진단일까.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나라 살림은 다른 현실에 맞닥뜨린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14회계연도 세입·세출 결산' 결과를 보면 지난해 불용예산은 17조5,000억원이다. 불용예산은 말 그대로 연초 예산으로 잡아놓았다가 쓰지 않고 남긴 돈을 말한다. 일반·특별회계로 이뤄진 국가 예산은 두 회계 간 중복지출이 많은 탓에 통상 해마다 5조~6조원의 불용이 발생하고는 한다.
하지만 지난 2012년부터 해마다 세수가 펑크 나고 복지를 비롯한 씀씀이가 많아지다 보니 나라 곳간 운용이 빡빡해졌다. 재정고갈을 걱정하는 당국은 묘수(?)를 찾아냈다. 바로 예산을 사용하지 않고 남기는 고육책이다. 기재부는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연말께 각 부처에 예산을 최대한 아껴 쓰라는 지시를 내렸다. 세수부족으로 자칫하다가는 반드시 필요한 예산을 돈이 없어 집행하지 못하는 재정절벽에 부딪힐 우려가 있어서다.
예산불용은 재정절벽을 차단하는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편성된 예산을 당해 연도에 모두 집행하지 않으면 총지출이 줄어들고 그 영향으로 재정수지 흑자가 늘어나거나, 적자라면 그 폭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17조원의 불용액을 반영하면 지난해 우리나라 통합재정수지는 사실상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
일반·특별회계의 중복거래를 제외한 지난해 '실질 불용예산'은 11조3,000억원에 이른다. 재정당국이 계획대로 예산을 집행했다고 하면 지난해 총지출이 그만큼 늘어난다. 통합재정수지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단순지표임을 감안하면 3조3,000억원(11월 기준)의 흑자는 8조원 적자로 돌아선다. 아직 12월 재정수지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통상 연말에 재정수지가 더 나빠지는 점을 고려하면 적자폭은 늘어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쌍둥이 적자'를 기록했던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통합·관리재정수지 모두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불용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2013년도에도 없던 최악의 재정적자다. 2013년 통합재정수지는 실질 불용예산을 반영하더라도 12조8,000억원 흑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용이 늘어나게 되면 재정적자 폭은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 재정악화를 가릴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며 "재정당국이 임의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을 줄이고 정확한 세수 추계를 바탕으로 나라 살림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