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전례없이 강도높게 재벌개혁을 강조함에 따라 정부가 한건주의식으로 무리하게 재계를 압박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일관된 제도적 틀을 통해 재벌체제를 개혁하기보다 돌출적인 사건을 끄집어내 도덕적으로 압박을 가할 경우 마땅한 대처방안이 없기 때문이다.재벌개혁의 직접적인 대상인 5대그룹이 재벌해체선언에 맞설 현실적인 수단은 없는 상황이다.
재벌개혁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다는 金대통령에게 시장원리라는 원론을 들이대며 반발하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당연히 5대그룹의 공식적인 반응은 『우리 그룹은 정부의 재벌정책에 따라 변하고 있다』는 정도다.
5대그룹은 일단 기업경영환경이 종전과 같은 재벌체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관과 브랜드를 공유하는 기업연합체 형태로 그룹을 변화시켜나가겠다는 수준에서 화답하고 있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삼성은 정부의 개혁정책에 발맞춰왔고 이제 마무리단계에 와있다』며 『시대상황이 이런 변화를 요구하고있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의 의지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경영의 투명성 제고나 재무구조개선, 업종전문화 등 원칙도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그룹해체의 길로 접어든 대우도 별다른 목소리를 낼 처지가 아니다. 이미 자동차전문그룹으로 방향이 정해진 대우로선 재벌개혁의 직접적인 대상에서 벗어난 셈이다. 오히려 「투명한 원칙에 따라 처리, 제2의 기아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金대통령의 발언으로 위안삼고 있다.
그러나 5대그룹의 속내는 다르다. 무엇보다 재벌개혁 압박이 그룹 총수를 직접 겨냥한다는데 무척 긴장하고있다. 주가조작사건으로 검찰수사가 진행중인 현대나 최종현(崔鍾賢)전회장 사망후 2세체제로 들어서며 상속세문제를 매듭짓지못한 SK가 느끼는 긴장감은 남다르다. 『계열 금융회사를 통한 재벌의 금융지배를 막겠다』고 했고 『변칙상속을 철저히 막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응이 예상보다 거셀 것이라며 벌써부터 걱정이다.
구조조정이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삼성이나 LG 등도 마냥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삼성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내부거래조사가 진행중이다. 삼성자동차에 대한 삼성 금융계열사의 부당지원여부가 중점 조사대상일게 분명하다. 가뜩이나 삼성자동차 퇴출에 따른 부담이 만만치않은 상황이라 걱정이 대단하다.
5대 그룹은 과거와 달리 재계의 의견이란 형식을 빌어 정부의 재벌정책을 견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임을 절감하고 있다. 대우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과감함」이 나머지 4대 그룹에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손동영기자SON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