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개입도 안먹혀… '경기부양ㆍ환율' 두 토끼 다 놓칠 판

■ 신흥국 금융시장 트리플 약세
정부가 푸는 돈 규모보다 빠져나가는 자금이 더 많아
오락가락 정책에 혼란 가중
선진국으로 위기 전염 조짐


금융위기의 공포가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넘어 신흥국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각국 정부가 내놓은 시장개입 정책이 전혀 먹혀들지 않아 사태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많은 국가들이 저성장을 감수하고 금리인상 등을 통해 환율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여서 자칫 경기부양과 환율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게 될 것이라는 경고마저 나오고 있다.

일단 22일 인도 금융시장은 전날 나온 정부의 개입에도 크게 출렁였다. 인도중앙은행(RBI)이 21일 국채금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800억루피(약 13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매입해 국채금리는 다소 안정됐으나 시중에 루피화가 풀리면서 화폐가치가 급락했다. 이날 장중 루피화 가치는 달러당 65.12루피까지 떨어져 사상 최저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당국이 성장촉진 및 환율안정책을 내놓겠다고 예고한 인도네시아 금융시장 역시 출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21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오는 23일 위기대응 경제정책 패키지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으나 22일 장중 루피아화 가치가 달러당 1만1,148루피아까지 하락해 4년4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주가도 2.3% 하락했다. 이외에도 20일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나 올리고 21일에는 매일 1억달러의 외화를 매각하겠다고 약속한 터키에서도 22일 리라화 가치가 달러당 1.9868리라까지 추락해 사상 최저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신흥국의 시장개입이 전혀 먹히지 않는 것은 개입 강도보다 신흥국에서 빠져나가는 돈의 규모가 월등히 많은 탓으로 풀이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푼 돈의 규모는 13조달러에 달하고 이 중 상당수가 신흥국으로 흘러들어가 웬만한 시장개입으로는 이를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도는 오락가락한 정책으로 오히려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다. 21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루피화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시중 루피화 유동성을 조이던 RBI가 이날 국채를 사들여 루피화를 푸는 등 상충하는 정책을 쓰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니콜라스 스피로 스피로소버린스트래티지 대표는 "인도가 그들의 정책을 매일매일 180도로 뒤바꾸면서 사태를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현재 대다수 신흥국들이 저성장은 감수하더라도 환율급등은 막아보자며 시장개입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먹히지 않아 저성장은 고착화하고 환율 및 금융시장 혼란은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라질은 기준금리를 4월 7.25%에서 7월 8.5%까지 올리고 이를 유지하고 있으나 달러 대비 헤알화 가치는 4월에 비해 약 21%나 추락했고 최근 브라질 재무부는 성장률 전망치를 3.5%에서 3%로 하향했다. 인도네시아도 2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대비 5.81%로 3년 만에 처음으로 성장률이 5%대로 추락했다.

전문가들은 외환 위기감이 신흥국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만큼 이 같은 혼란이 일부 국가에 국한되거나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기자와 만난 페리 와르지요 인도네시아중앙은행(BI) 부총재는 "인도네시아에 1997년식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아시아 국가 중 어느 하나가 급격히 흔들리면 미래 일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2010년 그리스에서 시작된 위기감이 인근 남유럽 취약국가로 확산된 것과 같은 현상이 현재 인도네시아를 덮치고 나아가 아시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신흥국을 둘러싼 위기감은 선진국으로 전이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21일 캐나다 언론 글로브앤드메일은 "인도 루피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캐나다산 원자재의 대인도 수출이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21일 캐나다 증시는 전반적인 약세 속에 원자재 부문 주가가 큰 하락폭을 나타냈다. 전세계 경제가 상호 무역으로 의존하고 있는 만큼 신흥국의 혼란이 전세계 각국으로 번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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