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반등에… 사우디- 미국 셰일업계 '석유패권 싸움' 2R

배럴당 60弗 안팎 상승하자 美 셰일업계 시추공 재가동
제한적 수준이나마 반격 기대
주도권 확보 사활건 사우디 "여차하면 증산" 출혈경쟁 불사
1차전이어 판정승 전망 우세


최근 국제유가가 반등하면서 글로벌 석유패권을 둘러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셰일업계간 '치킨게임' 2라운드가 펼쳐지고 있다. 미 셰일업계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안팎으로 튀어 오르자 생산을 중단했던 시추공을 재가동하며 반격에 나설 채비를 보이고 있다. 시장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건 사우디로서는 경제적 어려움에도 최소 2년간은 출혈 경쟁을 불사할 것으로 보여 이번에도 판정승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면 미 셰일업계는 생산량을 늘릴 경우 유가 하락에 또다시 수익성이 떨어지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 때문에 국제 유가도 추가상승이 어려워지면서 당분간 박스권에 갇혀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키 플레이어'는 여전히 사우디=지난해 11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결정을 주도한 사우디도 미 셰일업체와 마찬가지로 유가 하락의 후폭풍을 제대로 맞고 있다. 사우디의 외환 보유액은 지난 반 년 간 500억 달러나 줄었고 올해 재정적자 규모도 1,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올 1월 즉위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공공부문 임금 인상,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등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서 재정적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석유 부문이 재정 수입의 90%를 차지하는 사우디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 유지돼야 재정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이브라힘 알 아사프 사우디 재무장관조차 "지난 1년간 2,600개의 프로젝트에 500억 달러를 지출했다"며 "사우디의 금융 사정이 매우 좋지만 지출을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고용 등 실물 경제도 악화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의 올해 성장률이 3%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의 감산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사우디는 미국 셰일 업체와 브라질의 심해유전, 적대 관계인 이란 등 경쟁자들을 고사시키기 위해 여차하면 증산에 나설 태세다. 최근 원유 서비스업체인 베이커휴즈에 따르면 올 3월 현재 사우디가 가동 중인 석유·천연가스 시추공은 125곳으로 1년 전인 96곳보다 30% 이상 늘었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다.

투자기관인 WTRG이코노믹스 제임스 윌리엄스 에너지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사우디의 생산 능력 증가는 언제든지 원유 시장에 공급 홍수를 일으켜 유가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뜻"이라며 "이는 핵협상 타결 이후 이란의 석유 수출을 견제하고 아랍 동맹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테펜 허트호그 런던정경대 교수는 "사우디는 매우 큰 쿠션(완충막)을 갖고 있어 최소 2년간 외환보유액 감소와 국채 발행을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셰일업계 반격은 제한적=지난해 6월 이후 시작된 유가 급락에 미국의 석유·천연가스 시추공 숫자는 최근 679개로 5년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주 원유재고량도 390만 배럴 줄면서 16주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유가 반등에 힘입어 '프래킹(셰일업체가 석유·천연가스 채굴에 사용하는 수압 파쇄법)의 역습'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배럴당 50달러로는 미 셰일업체들을 파괴할 수 없고 65~70달러는 편안하게 생존할 수 있다"며 "제한된 수준이나마 셰일업계의 반격이 기대된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사우디가 1차 치킨게임에서 'KO승'을 거두지 못하고 미 셰일업체를 고사시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최근 "미 셰일 업체들이 저유가 시기에 비용 절감, 효율성 개선 등으로 생산 원가를 낮췄다"며 "브렌트 유가가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70달러 수준까지 오르면 글로벌 석유 전쟁이 다시 발발할 것"이고 말했다. 미국 최대 셰일원유 생산업체인 EOG리소스도 "WTI 가격이 배럴당 65달러 이상으로 오르면 두 자릿수 규모의 증산이 가능할 것"이라며 "올 4·4분기에 원유 생산이 성장세로 돌아서면서 내년에는 가속이 붙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문제는 유가 상승이 생산량 증가로 이어져 미 셰일업계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오펜하이머의 파델 가이트 선임 에너지 애널리스트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위로 올라서면 미 석유 생산이 올 하반기에 다시 증가할 것"이라면서도 "생산량이 하루 940배럴 수준에서 안정될 경우 셰일업체들이 다시 가격 하락과 싸워야 한다는 점은 나쁜 뉴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제 유가의 변동성이 크게 줄면서 과거처럼 급등락할 가능성도 낮다는 게 블룸버그의 설명이다. 원유중개업체인 PVM 타마스 바르가 석유 중개인은 "현재 유가 흐름은 시지프스 신화에 비유할 수 있다"며 "바위(유가)가 다시 굴러 내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산꼭대기에 다시 올려놓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이터가 지난달 말 전문가 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올해와 내년 평균 브렌트유 예상치는 각각 60달러, 71.5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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